손님 관찰하며 연기 공부 “배우는 성실해야 할 직업”
배우가 노년까지 활동하고 사랑받는 것은 쉽지 않다. 선우용여(선우용녀에서 개명)는 1966년 드라마 ‘상궁나인’ 주연부터 1977년 영화 ‘산불’로 대종상 여우조연상 수상, 1998년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최근의 예능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화려한 삶이다. 하지만 남편의 빚을 14년간 갚고 남편의 5년 투병을 받아냈으며 6년 전에는 뇌경색을 이겨내야 했던 고난에는 모든 생활인의 애환이 들어있다. 어쩌면 평균치보다 간난의 골이 깊었다.
오는 16일 오전 11시 LA반야사(주지 현철스님·939 S. Irolo St.)에서 삶과 불교를 화두로 신행발표회는 갖는 선우용여는 LA와 인연이 깊다. 1982~89년까지 LA에서 살면서 봉제공장과 식당을 했던 그는 “식당 카운터에서 연기를 제대로 배웠다”라고 말한다.
“나는 연기만 했지 사회생활을 못 해봤잖아. 이민 와서 4년 5개월 동안 한정식집 ‘향미’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한 거예요. 나는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웃음이 다 같은 웃음이 아니더라고요. 내가 연기를 몰랐던 거죠. (손님들 모습을 보면) 저절로 배우게 된다니까. 한국에 돌아가서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할 때 감독에게 그랬어요. ‘미국에 있었지만, 공부를 많이 했다.’”
식당에서 관찰만으로 연기를 배운 것은 그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제 성격이 어제 일을 생각 안 해요. 오늘 일이 중요하잖아요. 어제 내가 장군이고 장관이고 명예가 있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오늘 여기서 하는 일에 충실해야지. 지난 얘기 하며 살다가 큰일 나죠. 내가 한국서 배우였으면 뭐해요. 미국에서는 아니잖아요.”
오늘 식당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사람들을 열심히 보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연기 공부가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드라마라는 게 인생이구나’, ‘내가 사람들에게 인생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연기가 인생이고 인생이 연기에요. 나한테 확 닿으면 진실한 연기를 할 수 있잖아. 내가 안 닿으면 설렁설렁하게 되고. 내가 진실로 역할에 몰입할 때 나도 눈물 나고 시청자도 눈물이 나고.”
그에게는 연기도, 인생도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도 혼자 잘났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더불어 빛내주는 거지. 연기도 주인공이 잘나서 되는 거 아니에요. 조연, 엑스트라, 조명, 카메라 때문에 빛이 나는 거지.”
그는 지금도 손님이 없는 식당에 가면 걱정이 든다. ‘인건비가 얼마인데 …’ 생각이 먼저 난다. 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식당에 가면 꼭 사람 수대로 주문한다.
“모든 삶은 자기가 겪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거기서 배웠어요. 일방적으로 누가 어떻고 저렇고, 경험하지 않았으면 쉽게 말하지 말자, 입 다물고 듣자.”
그의 롱런은 에두르지 않는 솔직한 성격과 함께 일상에 뿌리를 둔 연기가 주는 친근함과 생생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에게 연기는 처음부터 신비로운 세계가 아닌 성실해야 할 직업이었다. “열아홉에 연기자가 돼서 스물둘에 애들 아빠를 만나 스물셋에 결혼했어요. 더구나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잖아요. ‘나는 탤런트나 배우가 아니야. 이제 직업이야.’ 그 생각을 하고 일했어요.”
예능에 출연할 때도 그랬다. ‘너는 연기자가 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니’라는 말도 들었다. 그의 대답은 직업인의 자세였다. “난 스크린 안에서는 뭐든지 다 해. 시청자들이 기쁘게 웃는다면 난 최선을 다해. 그게 예능이잖아. 난 시청자를 기쁘게 해줄 의무가 있어. 그렇지만 밖에 나가서 이상한 일은 안 해.” 그가 오늘까지 누리는 인기 비결의 하나는 직업인의 이런 사명감일 것이다. “누구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최고 아니에요? 직업이 다를 뿐이지.”
오랫동안 자녀와 손자가 사는 미국과 일이 있는 한국을 오갔던 그도 많은 한인들처럼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이 ‘안 늙으셨어요’ 하는데 내 나이는 내가 잘 알아요. 내 몸이 말해줘요. 남편이 꿈에 나오고 뇌경색이 왔는데 ‘이제 서서히 살아’라고 말한 것 같아요. 넘어지는 걸 조심하라는데 내가 세 번 넘어졌어요.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얘들 옆에 와서 사는 게 좋을까, 나 혼자 한국에 있을까. 요새 그걸 생각하고 있어요.”
안유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