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초기 가곡은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한국의 소리에 입문하기 제격이죠. 1932년작 ‘봄처녀’입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지난달 16일 미시간대 미술관에 우리 가곡이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울려퍼졌다. 매튜 톰슨(40) 음대 교수가 ‘K-가곡: 한국 가곡 리사이틀’을 기획하고 사회와 연주까지 도맡았다.
지난 14일 화상으로 만난 톰슨 교수는 공연의 감흥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공연 이후 아직도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2011년부터 미시간대 강단에 선 톰슨 교수는 2020년 한국 가곡을 집대성한 무료 데이터베이스(DB) 개발을 시작했다. ‘한국 가곡 자료원'(Korean Art Song Resource)이라는 이름의 DB에는 벌써 1천여곡이 수록됐다. 작곡·작사가, 조성, 템포, 음역대 등으로 세부 검색이 가능하다.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는 링크도 제공한다.
한국 가곡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든 매튜 톰슨 미시간대 음대 교수가 지난달 교내 리사이틀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모습. 미시간대 제공.
영감의 씨앗을 준 건 가족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한국 문화를 향한 남다른 관심은 자연스레 가곡으로 이어졌다.
그의 애정은 미국 가곡교육이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고, 한국 학생도 모국의 가곡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의식으로 발전했다. 그러던 차에 학제를 아우르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받고서 DB 구축 아이디어가 가장 먼저 뇌리를 스쳤다.
“음악에 구체적인 시의 언어가 입혀지고, 피아노와 노래로만 이뤄져 무대와 청중이 내밀하게 교감하는 게 가곡의 특징이죠.” 톰슨 교수는 “10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새로운 전통을 만든 것이 한국 가곡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DB 구축은 미시간대학 음대·공대·한국학연구소 등이 협업하는 현재 진행형 프로젝트다. 지난달 공연은 이 프로젝트를 중간 결산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음대 구성원들이 1시간 동안 11곡을 선보였다. 공연 당일 의자 수십 개를 추가로 구해와야 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톰슨 교수가 개발한 DB 메인 화면. 한국 가곡 자료원(Korean Art Song Resource) 홈페이지 캡처.
톰슨 교수는 이미 파격적인 도전으로 교내에서 이름이 났다. 클래식 음악 일색인 교육과정을 깨고 비디오게임 음악을 다룬 강좌는 교내 대표적 교양수업으로 자리 잡았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장르를 가로질러 협연하는가 하면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아직 빛이 닿지 않은 곳에 빛을 쬐는 게 내 신념이죠.” 성소수자인 그는 어릴 때부터 미국 백인 남성이라는 좁은 틀을 깨기 위해 도전을 겁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체 50시간이 넘는 DB 수록곡 가운데 그가 가장 아끼는 곡은 뭘까. 그는 “작곡가 중에 아는 분들이 많아 어느 하나를 뽑으면 누군가 기분이 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톰슨 교수는 DB를 늘려가는 동시에 곡마다 외국 성악가를 위한 발음법과 번역을 추가하고 있다. 그는 “홈페이지가 허전해 디자인과 학생도 애타게 찾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의 젊은 층이 가곡을 멀게 느끼는 것을 알고 있다며 DB가 그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가곡은 바로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역사이자 꿈이고 이야기죠. 한국어가 모국어인 분들은 그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연합뉴스.
가곡 리사이틀 무대. 미시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