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백전노장 더스티 베이커(73) 감독이 “흑인 선수 없는 월드시리즈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 했다.
베이커 감독이 이끄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휴스턴은 28일 시작하는 7전 4선승제 월드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최종 우승을 놓고 맞붙는다. 하지만 두 팀의 월드시리즈 로스터는 모두 백인 선수들과 중남미 출신 선수로 채워질 예정이다.
필라델피아는 이미 정규시즌부터 흑인 선수 없이 경기를 해왔고, 휴스턴의 흑인 외야수 마이클 브랜틀리는 어깨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다. 결국 1950년 이후 72년 만에 미국 출신 흑인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월드시리즈가 열리게 됐다.
베이커 감독은 28일 현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흑인 선수가 월드시리즈에 한 명도 나서지 않는 게 MLB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1년 혹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흑인 선수의 선구자인 재키 로빈슨이 1947년 MLB의 인종 장벽을 무너뜨린 이후, 흑인 선수 없이 월드시리즈가 열린 해는 필라델피아와 뉴욕 양키스가 맞붙은 1950년이 유일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명장 베이커 감독이 더그아웃을 지키는 올해 월드시리즈 그라운드에서 흑인 선수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언론은 그 원인으로 “유능한 흑인 운동 선수가 더는 야구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흑인 유망주들은 학창시절 여러 종목의 선수로 활약하곤 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MLB보다 대우가 좋은 미국프로풋볼(NFL)나 미국프로농구(NBA)를 선택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 시즌 MLB 개막전 로스터에서 흑인 선수의 비중은 7.2%까지 떨어져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MLB 흑인 사령탑 최초로 통산 2000승 고지를 밟은 베이커 감독은 이같은 현상을 걱정하면서도 “다행히 최근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지명되는 흑인 선수들이 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미래의 변화에 기대를 걸었다.
한편 휴스턴은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로 베테랑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39)를 예고했다. 이로써 벌랜더는 2000년대(2006년)와 2010년대(2012·2017·2019년)에 이어 2020년대까지 3세대에 걸쳐 월드시리즈 선발투수로 출전하는 역사를 남기게 됐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월드시리즈 선발 투수로 나섰던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MLB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필라델피아는 오른손 에이스 에런 놀라가 1차전 선발 투수로 출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