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엔 합헌 결정 바이든 행정부 “국가안보에도 바람직” 지지…트럼프 때는 제도에 반대
연방대법원이 31일 흑인 등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대학 입학 제도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합헌 여부에 대한 심리를 개시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하 SFA)이라는 단체가 소수인종 배려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연이어 심리했다.
SFA는 지난 2014년 이 소송을 처음 제기했으며 1·2심에서는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거나 수학 공식에 따라 인종 분포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두 대학이 따랐다고 판결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3년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6년에도 이 판례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합헌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낸 존 로버츠 대법원장,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등 3명의 대법관이 현재 대법원에 있으며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3명까지 가세해 총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이 6명이라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와 로이터통신 등은 실제 이날 심리에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소수인종 배려입학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면서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SFA의 주장은 하버드대가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차별해 연방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인종이나 피부색,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을 위반했다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 대해서는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해 법의 보호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이 조항은 인종분리정책 등 흑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근거로 활용됐지만, SFA는 특정 인종에 대한 배려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두 대학은 인종은 지원자를 평가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종을 고려하지 않으면 인구학적으로 다양한 분포의 학생을 확보할 수 없어 대학 교육에 중요한 관점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수 대법관들은 다양성이라는 가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얼리토 대법관은 “대학 입학은 제로섬 게임”이라며 “인구비율 대비 입학생이 적은 소수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만 ‘플러스’를 주면 다른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다양성(diversity)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난 도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버츠 대법관은 ‘인종 중립’적인 방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 이미 제도 폐지에 대한 대안을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잭슨은 SFA 주장과 달리 대학이 입학 심사에서 인종뿐 아니라 40개의 요인을 고려한다면서 “SFA는 대학들이 인종만 고려한다는 점을 입증하거나 한 사례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역시 진보 성향인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미국인이 된다는 의미, 그리고 미국의 다원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의 한 부분은 (대학 같은) 기관들이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다양함을 실제 반영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소수인종 배려를 지지한다.
법무부는 작년 12월 대법원에 낸 의견에서 하버드대는 캠퍼스 내 다양성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인종을 고려했다며 하급심 판결을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를 대리하는 엘리자베스 프리로가 법무부 송무차관보는 이날 심리에서 사관학교가 다양한 인종의 학생을 받아들여 군 장교단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하는 게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대부분 백인이 장교를 맡은 반면 이들의 지휘를 받아 실제 전투를 수행한 병사는 흑인 비율이 높아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20년 법무부는 하버드대가 입학 절차에 인종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연방 민권법을 위반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미국 언론은 대법원 결정이 내년 늦은봄 이후에야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내 여론은 제도 존치에 부정적인 편이다.
WP와 조지 메이슨대 공공행정대학원 ‘샤르스쿨’이 지난 7~10일 미국 성인 1천23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소수인종 배려입학 금지에 찬성했다.
이미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플로리다, 아이다호, 미시간,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워싱턴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소수인종 배려입학을 금지했다.
이날 대법원 밖에서는 학생과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 등이 “다양성을 수호하자, 기회를 보장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