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8)
시월의 마지막 밤은 특별한 날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되는 노래 때문인지, 한국에서 10월 31일은 그냥 보내면 뭔가 아쉬운 날이었다. 그래서 작은 음악회나 전시회에 가보거나,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월의 마지막에 의미를 담아보곤 했다. 미국에서 시월의 마지막 날은 이별 노래 같은 것이 감히 끼어들지 못하는, 유령과 사탕으로 가득한 할로윈 데이다.
할로윈 축제는 더위와 추위 사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 아이와 어른의 사이, 경계가 겹쳐서 흐려지는 접점에 있는 축제 같다. 고대 켈트족의 문화에서 전해져 온 축제가 미국의 설탕 상업주의와 만나 새롭게 만들어진 축제라는 유래를 보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밤의 놀이로 보인다. 분장을 하고 이웃집 문을 두드려본 아이와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의 할로윈이 다른 의미인 것처럼 어린 시절의 놀이 경험은 사람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The Turtle Ship〉(사진) 이 책은 이순신의 어린 시절에서 거북선을 만들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인 헬레나 구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린 시절에 들었던 거북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거의 다 아는 이순신장군과 거북선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화는 바닷가에 사는 어린 이순신이 애완 거북이를 기르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이순신은 거북이와 친구가 되어 수영시합을 하며 논다. 이순신은 바다를 건너 항해하는 배들을 지켜보며 언젠가 세계를 탐험하고 싶은 꿈을 꾸지만 어떻게 꿈을 이뤄가야 할지 모른다며 거북에게 말한다. 거북은 대답하지 않지만 이순신은 거북의 얼굴에서 지혜를 보았고, 그의 느리고 꾸준한 동작에서 인내를 배운다.
어느 날, 나라에서 새로운 전함의 디자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거북을 이용한 전함을 생각하고 부모님과 함께 궁전으로 가서 왕을 만난다. 이순신은 용기를 내어 거북이의 강하고 꾸준하며 결코 가라앉지 않는 힘에 대해 말해보지만, 궁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이순신의 거북을 비웃는다. 하지만 갑자기 거북에게 달려든 고양이가 거북 등에서 미끄러지고 딱딱한 껍데기 때문에 아무런 공격을 못하는 것을 본 왕과 신하들은 이순신의 지혜에 감탄한다. 훗날 이순신은 장군이 되어 거북선을 타고 많은 적을 물리쳤다.
거북선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나대용 장군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대용 장군은 전라남도 나주 태생으로 물방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거북선을 연구하여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에게 거북선 제작을 건의했던 인물이다. 더 나은 거북선을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전장에도 참전하여 싸우다 부상을 입어 사망한 군함 연구가이며 군인이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 비해 나대용 장군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결정짓는 작가의 의지가 한 몫 한 게 아닐까?
남자아이들은 전쟁놀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모두가 공격적인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장난감 무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초소나 참호 짓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아동 심리 연구가들에 의하면 아이들의 공격성은 사회적학습의 영향일 수도 있고, 살아남기 위한 유전적 원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놀이에서의 공격은 할로윈의 분장처럼 모두 가짜라야 한다.
나쁜 유령의 공격을 피하려 유령처럼 분장하듯이, 약한 아이가 강한 로봇이 되거나 거대한 공룡이 되어 공격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것은 건강한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성으로 실제로 남을 해치게 된다면 그것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며, 격리 되어야하는 위험물이다.
길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버려진 군모를 쓰고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뉴스로 보았다. 무너져 내린 집터에서 각목을 주워 박격포를 만들어 설치하고 참호를 만들어 숨어 있는 아이들과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내기 위해 애쓰느라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는 부모들… 이 아이들의 전쟁놀이가 놀이가 아닌 내일의 실전이 될까 정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