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에겐 10년, 20년을 살았어도 미국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문화 차이, 법과 제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입법-행정-사법 등 삼권분립은 알아도 보통 사람이 별로 경험할 일이 적은 사법부 쪽은 특히 더 낯설다. 그럼에도 시민권 취득을 위해서라면 상식 수준의 내용은 알아야 한다.
미국 정부 발행 시민권 시험 예상 문제집에도 연방대법원 등 사법부와 관계된 문항이 6~7개는 되고 실제 질문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연방대법원을 중심으로 미국의 사법제도를 개괄해 본다.
연방대법관
미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연방대법원 판사(대법관:Justice)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이다. 건국 초기엔 6명이었고 많을 때는 10명일 때도 있었지만 1869년 이후 지금까지 9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1789년 연방대법원 창설 후 지금까지 233년 동안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사람은 104명뿐이다.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연방상원 청문회와 표결을 거쳐 최종 임명된다. 대법관은 종신직으로, 한 번 임명되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해고당하지 않는다.
2022년 11월 현재 연방대법관 9명 중 여성은 3명, 흑인은 2명이다. 아시아계는 없다. 현재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했고, 3명은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했다.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은 2005년 임명된 존 G. 로버츠이다. 연방대법원장은 사법부 최고 수반이지만 판결 때는 다른 대법관과 똑같이 한 표의 투표권만 갖는다.
사진 / Fred Schillin, Collection of the Suprem Court of the United States, 자료 / 연방대법원 웹사이트
대통령은 현직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밝히거나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에만 대법관 지명 기회를 갖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재임 1933~1945년)은 9명이나 임명할 수 있었지만 카터 대통령(재임 1977~1980년)은 한 번도 지명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 아들 부시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각각 2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닐 고서치와버렛캐버노, 에이미 코니 버렛 등 3명을 대법관 자리에 앉혔다. 현직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2022년) 흑인 케탄지 브라운 잭슨을 임명했다. 케탄지 잭슨은 미국 사법부 233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할 땐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의 인물을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은 보수적이고,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은 진보 성향을 띤다. 그렇지만 실제 판결에선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공화당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지명한 얼 워런 대법원장은 인종에 따른 학교분리법 철폐 등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미국의 진보적 변화를 이끌었다.
1990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도 2009년 은퇴할 때까지 잇따라 진보 성향의 판결에 동참했다. 공화당인 아들 부시 대통령이 뽑은 존 로버츠 현 대법원장 역시 민주당 정부 정책인 오바마케어에 찬성표를 던졌다. 모두 정치로부터 사법부의 확고한 독립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역대 연방대법관의 이력과 경력은 매우 다양하다. 이전에 법관 경력이 있었던 사람은 절반 정도이고 법대 교수였거나 인권 변호사, 검사, 정부 관리 등의 배경을 가진 인물도 있다. 연방 하급 법원 판사 중에서 대법관으로 지명되는 경우도 꽤 있지만 그들 역시 과거 변호사나 법학교수 등을 거친 경우가 많다.
연방대법관의 이런 다양한 직업 배경은 중요 판결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살피게 되고 각계각층의 이익과 뜻을 골고루 반영하는 바탕이 된다.
연방대법원 문장
연방대법원 판결
연방대법원은 일반 재판과 달리 사건의 유무죄를 가리거나 형량을 선고하지는 않는다. 대신 한국의 헌법재판소처럼 법률을 해석하고 법안이나 행정조치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아닌지 여부를 판결한다.
그밖에 연방대법원이 취급하는 사건은 다음 세 가지 경우다. 첫째 연방 하급법원에서 올라온 사건, 둘째 각 주 대법원에서 올라온 사건, 셋째 연방대법원이 1심 재판을 직접 관할하는 경우로 외국 고위인사 관련 사건이나 각 주끼리의 소송 등이다. 매년 연방대법원까지 올라오는 케이스는 1만 건에 달하지만 실제 심리하는 경우는 100~150건 정도다.
연방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은 다른 어떤 법원도 더 이상 항소할 수 없는 최종 판결이 된다. 그런만큼연방대법원 판결은 미국 국민의 삶을 바꾸고 역사를 바꿀 만큼 큰 파급력을 지닌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는 최저 임금의 합법성을 처음 인정했고(1937년), 흑백 분리 교육시설이 불평등하다고 판결함으로써 흑인의 법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향상시켰다(1954년), 여성 근로자도 동일한 일을 하는 남성 근로자와 동등한 보수를 받아야 함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1974년), 동성결혼을 금지한 주 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동성결혼 합법화 길을 열기도 했다(2015년).
올해(2022년)는 여성의 낙태에 대한 연방헌법상의 권리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려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상황에서 임신 6개월이 되기 전까지 여성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찬성 5 반대 4로 49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들 외에도 연방대법원은 각 시기마다 쟁점이 된 사회 이슈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림으로써 미국인의 삶을 바꾸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왔다.
미국의 법 정신
미국의 사법제도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법 정신은 단순명료하다. 어느 누구도 뒤에 남겨놓지 않고(No one left behind) ‘모두가 같이 간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들어와 뒤섞여 산다. 이들은 피부색과 출신국은 다르지만 똑같은 미국 시민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까. 어떻게 해야 이들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건국 초기부터 고민했던 문제이며 그것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 미국의 법이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해 세워진 나라였지만 지금은 모든 종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린다.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낙오된 병사가 있다면 열 명이 죽더라도 그 병사를 구해내려 한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같이 간다’는 정신이다. 2022년 11월 들어 연방대법원이 위헌 여부 심리를 시작한 소수계 우대 대입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도 그렇다.
이 제도가 지금은 학력 수준이 높은 아시안 학생들의 역차별 문제로 비화되어 있긴 하지만 원래 취지는 ‘모두가 같이 간다’였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흑인과 라티노 학생들이 자기 실력만으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인종 간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사회는 더 불안정해 질 것임을 고려해 도입된 제도였던 것이다. 미국이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이면서도 유사시 세계 어떤 나라보다 국민적 통합이 잘 이뤄지고 있는 비밀도 여기에 있다.
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
배심원 제도의 취지
미국의 사법제도 중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배심원(Jury)이다. 이는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제도다.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서 판결이 좌우되는 것을 막아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취지다. 배심원 출석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투표 참여와 함께 가장 먼저 누리고 이행해야 할 권리이자 의무다.
배심원들이 단순히 유죄냐 무죄냐를 결정하는 것을 소배심(petit jury)이라 하고, 형사재판에서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대배심(grand jury)이라 한다. 소배심은 무작위로 선정된 12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대배심은 16~23명의 배심원이 비공개, 다수결로 진행한다는 점이 차이다.
소배심 케이스는 1995년 유명한 프로풋볼 선수였던 O.J. 심슨이 연루된 살인사건 재판이 유명하다. 당시 흑인 9명, 중남미계 1명, 백인 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었다.
대배심이 관심을 끈 것은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 때다. 당시 배심원단은 일반의 법 감정과 달리 백인 경찰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배심원 제도의 공정성 여부가 도마에 올랐었다.
연방 법원과 주 법원
미국은 50개 주가 모인 연방 국가다. 연방법 다르고 주법 다르다. 법원도 연방 법원과 주 법원이 따로 움직인다. 미국 법은 판례가 지배하는 불문법 체계다. 각각의 사건에 대해 그동안 내려진 판례를 기반으로 접근한다. 반면 한국 법은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성문법을 근간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법에 익숙했던 한인들이 미국 사법 시스템을 어려워하는 이유다.
연방법원은 3심급 구조다. 최하급심인 1심(trial court) 재판은 전국 94개 연방지법(District Court)에서 이뤄진다. 2심인 항소심은 연방항소법원(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이 맡는다. 보통 순회법원(Circuits Court)법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전국에 13개가 있다.
순회법원이란 미국 건국 초기, 판사들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판을 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물론 지금은 판사가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마지막 최종심은 최고 법원인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이다.
각 주의 법원도 대개 3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2심제를 선택한 주도 있다. 주 법원의 3급심은 보통 1심 법원(Trial Court) ⇒ 항소법원(Court of Appeals) ⇒ 대법원(Court of Last Resort / Supreme Court)으로 구성된다. 주 법원 판사는 심급별로 선발 방식이 복잡하게 세분되어 있지만 크게는 선거로 뽑는 경우와 주지사가 직접 임명하는 경우로 나뉜다.
연방대법원 관련 시민권 시험 예상문제
▶문:법치주의란 무엇인가?(What is the rule of law?)
-답:모든 사람은 법을 따라야 한다.(Everyone must follow the law.)/ 지도자는 법을 준수해야 한다.(Leaders must obey the law.)/ 정부는 반드시 법을 따라야 한다.(Government must obey the law.)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No one is above the law.)
▶문:정부의 한 부문이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What stops one branch of government from becoming too powerful?)
-답: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 권력분산, 즉 삼권분립 (separation of powers)
▶문:사법부는 무슨 일을 하는가?(What does the judicial branch do?)
-답:법률 검토(reviews laws)/ 법률 해석(explains laws)/ 분쟁이나 다툼, 의견 불일치 해결(resolves disputes or disagreements)/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판단(decides if a law goes against the Constitution)
▶문:미국의 최고 법원은 무엇인가?(What is the highest court in the United States?)
-답:연방대법원(the Supreme Court)
▶문:연방대법원 판사는 몇 명인가?(How many justices are on the Supreme Court?)
-답:9명 (nine)
▶문:현재 연방대법원장은 누구인가?(Who is the Chief Justice of the United States now?)
-답:존 로버츠(John Roberts) / 존 G.로버츠 주니어(John G. Roberts, J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