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물가 발표만으론 정책전환 어려울듯…”금리 계속 높을 것” 경고도
미국의 물가 급등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발표에 이제 시장의 시선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 쏠리고 있다.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밟는 등 ‘슈퍼 긴축’으로 시장을 짓누른 연준이 이제 금리인상의 가속 페달에서 서서히 발을 뗄 수 있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높아져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7.7% 올라 전문가 전망치(7.9%)를 하회하는 등 모든 면에서 예상보다 낮은 상승률을 찍었다는 10일 노동부 발표 직후 기준금리에 대한 예상치가 크게 출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 반영된 12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전날 57%에서 하루 만에 81%로 급등했다. 반면 5연속 자이언트 스텝 확률은 19%로 뚝 떨어졌다.
CPI 발표 직후에 나온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도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한다.
오는 12월 연준의 속도 조절 가능성을 맨 처음 보도한 WSJ은 이날 기사에서 10월 물가 보고서가 연준의 다음 달 0.5%포인트 금리인상 계획을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내년 중순으로 예상되는 연준의 최종금리가 5%를 넘어 6%에 육박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공개 분출됐으나, CPI 발표 후에는 최종금리가 5%에 못 미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더 많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은 단순히 10월 CPI가 전망치를 하회한 것을 넘어 내용적인 면에서도 점차 물가상승률 둔화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전체 CP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용이 전년 동월보다 6.9% 급등해 1982년 이후 최대폭 상승했지만, 주거비 상승 속도는 내년 중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내다봤다.
중고차(전월 대비 -2.4%)와 의류(전월 대비 -0.7%)는 이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공급망 차질도 계속 나아지는 추세다.
프린시펄 자산운용의 수석 글로벌전략가인 시마 샤는 NYT에 CPI 전년 대비 상승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기 전인 지난 2월보다 낮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물가상승률 하락은 이미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의 한 마켓. 로이터 사진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커지면서 나스닥 지수가 장 초반 5% 넘게 폭등하는 등 뉴욕증시가 급등 출발했고,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4% 아래로 떨어지는 등 시장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시장 반응은 연준이 단지 12월 인상폭을 0.5%로 조절하는 차원을 넘어 조만간 금리인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예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물가상승률 둔화 발표만으로 연준의 피벗을 점쳐서는 안 된다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자문의 마이클 아론 수석 투자전략가는 CNBC방송에 “투자자들은 여전히 조바심을 내며 파월의 피벗을 기다리고 있지만 조만간 그런 소식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며 “오늘 아침 시장의 열광은 다소 오버액션”이라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많이 내려갔다고 해도 여전히 연준 목표치 2%의 4배에 가깝고, 석 달 연속 하락하던 에너지 가격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식료품 가격도 전년 동월보다 12.4% 치솟아 1979년 이후 최대폭 상승했다.
노동부가 이날 별도로 발표한 9월 실질평균소득이 전월보다 0.1%, 전년 동월보다 2.8% 각각 떨어졌다는 사실도 연준의 피벗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다.
근로자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가 상승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전에 11월 CPI 발표도 있다는 점에서 연준은 최소 두 달치 지표를 면밀히 검토해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인하 검토는 매우 시기상조”라며 높은 수준의 금리를 계속 유지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줄이더라도 긴축 페달에서 완전히 발을 떼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존 린치 코메리카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NYT에 “주택, 임금, 에너지의 지속적인 물가 압력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길어질 것임을 시사한다”며 “파월 의장도 지난주 ‘금리는 오랫동안 높은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