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 창문 앞에 선 나무에 노란 단풍이 늦가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은퇴하고 이곳에 와서 콘도에 살고 있으니, 내가 낙엽을 치우지 않아도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바람개비로 낙엽을 불어 모아 치워도 낙엽은 또 떨어져 길거리에 날린다. 노란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과 낙엽을 치우는 모습을 보니 전에 오하이오 살 때 낙엽 치우던 일이 생각난다.
30년 가까이 살던 오하이오의 우리집 앞 바당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두 그루 있어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여행이라도 갔다가 집으로 올 때 멀리서도 보이는 큰 나무가 집으로 돌아오는 우릴 반기는 것 같아 좋았다. 가을이면 낙엽을 치우고 나면 또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앞집, 뒷집, 양쪽 옆집 다 백인들 가정이고 우리만 유색인종이어서 정원을 깔끔하게 하는 이웃 때문에 우리도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바람에 날려 이웃집 마당으로 날아가기 전에 치우느라 애썼다.
둘째 아들이 중학생 때, 녀석과 낙엽을 치우던 일이 생각난다. 낙엽을 전기 바람개비와 갈퀴로 모아 커다란 비닐 자루에 넣어서 길가에 놓으면 된다. 아들은 바람개비로 나는 갈퀴로 낙엽을 마당의 가장 자리에서 가운데로 모은다. 마당 가운데 낙엽들이 모이니 푹신하게 쌓인다. 아들이 바람개비를 던지고 푹신한 낙엽위에 뒹군다.
레슬링 매트보다 더 푹신하다며 아들은 나에게 레슬링을 하자고 덤빈다. 그는 학교에서 레슬링팀에 들어 레슬링을 한다. 레슬링이 아니라 한국식 씨름을 하자고 제안했다. 레슬링은 넘어져서도 서로 싸우지만, 씨름은 상대방을 먼저 땅에 쓰러트리면 끝난다. 낙엽을 쓸다가 두 부자가 씨름판을 벌렸다. 나도 한창이던 때라 아들이 먼저 쓰러졌다. 쓰러져 낙엽 속에 묻혀도 푹신한 쿠션, 녀석은 또 덤비고, 또 덤벼서 결국 내가 지쳐 나가 떨어 졌다. 그제야 씨름은 끝났다.
“낙엽 치워드립니다. 전화 주세요” (Got the leaves? Don’t just bark about leaves. Call THE HOUNDS) 전단지를 받고 전화했을 때 주말에 전화를 준다고 했다. 비용도 그때 알려 준다고 했다. 컴퓨터 GPS에 우리 집 주소를 넣으면 자기 사무실에 앉아서도 수거해야 할 낙엽의 양을 알아볼 수 있어 수거비용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토요일 골프를 치고 집에 오니 누군가 우리 마당의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낙엽 치워준다고 전단 돌린 사람 인줄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옆집 재키와 그녀의 아들 엘리엇, 엘리엇의 친구 댄, 이렇게 셋이서 우리 집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7 학년인 엘리엇 과 댄, 댄은 바람개비로 낙엽을 날려 모아 낙엽의 봉우리들을 만들고, 재키와 엘리엇은 모인 낙엽을 비닐 자루에 넣고 있었다.
활달하고 젊은 재활 치료사인 재키는, 96살까지 살다가 죽고 간 랄프네 집을 사서 개축하여 조개 껍질 같이 정갈하게 만들고, 마당도 큰 나무를 잘라버리고 새 나무들을 심고 집 주위를 아름답게 꾸며 이웃이 더 좋아졌다. 주말이면 가끔 재키가 포니테일을 나풀거리며 마워를 밀고 성큼성큼 걸어가며 마당의 풀을 깎는 모습이 활동적인 백인 젊은 여성의 매력으로 보였다.
“옆집 애들에게 낙엽 치우라고 시켰어?”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물었다. “난 자기가 엘리엇에게 시킨 줄 알았지!” 마당에 나가서 재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아, 하고 재키는 웃었다. 자기네 마당 낙엽을 치우고 전 날 저녁 아들 밴드부 동아리가 자기네 지하실에서 연습할 때 소리가 이웃에 방해가 되었을 수도 있어 미안하고 그래서 낙엽을 치우자고 시작했다고 했다. 밴드부가 연습하는 것은 알았지만 소리가 방해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나도 아내도 그들과 합세하여 낙엽을 모으고 비닐 자루에 넣었다. 처음으로 그들과 협동으로 땀을 흘리며 낙엽을 모으고 자루에 넣고 옮기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잡담도 하고 정보도 나눴다. 낙엽을 치우며 그들 이웃과 친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누런 낙엽 밑에 깔렸던 잔디풀이 드러나자 누렇던 마당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아내가 얼마의 돈을 재키에게 주니 거절한다. 재키, 엘리엇도 댄도 여러 시간 수고했는데, 다음에 음악 파티 할 때 피자를 사다 주면 좋겠어, 아니면 아들 밴드 활동에 보태면 고맙겠다고 하며 아내가 재키의 손에 돈을 강제로 쥐여주니, 재키도 고맙다고 하며 돌아 갔다.
창밖에 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립고 아름답고 훈훈하다. 마른 낙엽은 쌀이나 옥수수처럼 한 그램에 4.7K칼로리의 열량 있다고 한다. 한 해에 지구상에는 엄청난 낙엽이 날리고 물에 흘러 사방으로 흩어져 미생물들을 살려 먹이 사슬의 고리를 만들고, 땅을 비옥하게 하며, 탄소를 고체상태로 유지해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도 한다. 계절 따라 마당과 길에 떨어지는 낙엽이 치우기 귀찮고, 삶과 죽음을 연상시켜 슬프게도 보이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