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대형 악재가 터졌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2일 하원에 자신의 세금 신고 내역을 제출하지 않게 해달란 트럼프의 요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재무부는 트럼프의 재임 기간을 포함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총 6년 치 자료를 하원에 제출해야만 한다.
세금 신고 내역 제출을 두고 트럼프와 미 하원의 갈등이 시작된 건 그가 재임 중이던 2019년이다. 당시 하원 세입위원회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자 트럼프가 이끄는 재무부는 이를 거부했다. 임기 중 혹은 임기가 끝났을 때 의례적으로 자신의 납세 내역을 공개해 온 전임자들의 ‘전통’을 깬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재무부가 민주당 우위 하원 편에 서며 세금 자료를 공개할 뜻을 내비치자 소송전이 시작됐다. 지난달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은 하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트럼프는 이에 반발해 상고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결정으로 트럼프는 꼼짝없이 세금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얼마 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를 일으키지 못해 ‘트럼프 책임론’이 일던 상황에서 또다시 위기를 맞은 것이다.
트럼프가 이토록 세금 자료 공개를 꺼린 이유는 무얼까.
CNN 방송은 5가지 이유를 대며 첫 번째로 “트럼프는 그가 말해온 것과 달리 생각보다 부자가 아닐 수 있다”고 꼬집었다. ‘부유함’ 그 자체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해 온 트럼프는 자산이 100억 달러 이상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하지만 “실제론 그 절반도 되지 않을 것”(포브스)이란 설명이다.
무엇보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CNN은 “취임 첫해였던 2017년 트럼프가 낸 소득세는 고작 750달러(당시 환율 약 80만 원)”라며 “부자가 낸 세금이라기엔 턱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식 ‘절세의 기술’이 낱낱이 까발려질 위험도 있다. 지난 2020년 뉴욕타임스(NYT)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트럼프의 18년간 납세 내역을 보도하며, 그가 소득세로 9500만 달러(약 1280억원)를 낸 뒤 무려 7290만 달러(약 980억원)를 환급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CNN은 또 트럼프의 부가 러시아 측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 자선단체 기부 내역이 과장됐음이 드러날 수 있단 점도 짚었다.
문제는 얼마 전 치러진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당이 됐단 점이다. WP는 “시간은 민주당 편이 아니다”며 민주당이 올해 안에 조사를 마쳐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보도했다.
예상보다 트럼프에 큰 타격이 안 될 것이란 얘기도 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에겐 악몽 같은 날일 것”이라면서도 “이런 압박이 트럼프를 ‘정치적 투사’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자신이 ‘정치적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지지세를 더욱 규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트럼프 세금 관련 보도를 집요하게 해온 NYT도 “트럼프의 세금과 관련해 이미 알려진 바가 많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놀라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