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수감사절 가족 모임은 테네시주 차타누가에서 가졌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명소가 많은 한적한 장소를 물색하던 딸들이 선택한 도시다. 차타누가 추추로 정겨운 곳이라 우리도 좋다고 동의했다. 록 시티 가든 가까이 있는 집에 먼저 도착해서 짐을 풀고 다른 가족을 기다리며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산에 가슴이 뛰었다. 가족들이 도착하자 3층 집안에 화사한 단풍빛 햇살이 들어왔다.
워싱턴DC에서 온 5살 손주는 와락 내 품에 한번 안겼다가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무겁게 들고 온 일렉트릭 기타를 소파에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눕혀놓고 다시 뛰어나갔다. 2층 창문을 통해서 내려보니 뒤뜰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간 손주는 잠시 후 사위와 돌아왔다. 사위는 들고 온 앰프를 소파 옆 작은 테이블에 놓고 손주에게 주의를 줬다.
손주가 전원 케이블을 앰프와 기타에 연결시키고 코드를 튕기니 온 집안에 요란한 굉음이 울렸다. 그것은 손주가 우리에게 한 도착 인사였다. 하루 종일 운전해서 내려오는 동안 뒷자리에 묶이듯 카시트에 고정되어 오면서 손주가 제일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새로 가진 일렉트릭 기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사줬다고 딸을 나무랬지만 딸도 남편이 하는 일을 막지 못함을 안다.
기타치는 취미를 가진 큰사위는 손주가 3살쯤 되었을 적에 어쿠스틱 기타를 사줬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나이에 진짜 기타를 가진 손주는 손이 작아서 코드를 못 잡으니 기타 피크로 열심히 코드를 튕기며 사위와 함께 흥얼거렸다.
그리고 영국의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노래에 반했고 특히 믹 재거의 공연모습에 매료당한 어린 손주가 웃옷을 벗고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작은 믹 재거였다. 아직 동요를 부를 아이가 롤링스톤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놀라워서 즐기면서도 나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주길 진심으로 빌었다.
그러나 올해는 아버지가 가진 일렉트릭 기타를 탐내자 사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리 사줬다.
함께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는 동안 손주는 매일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코드를 신나게 누르고 튕기며 가족들을 위해 연주했다. 2살짜리 손주가 만지고 싶어서 기타에 손을 대면 팔짝 뛰면서 기타를 보호한 바람에 아이는 여러 번 울었다. 손주가 부드러운 멜로디를 흘리다가 앰프의 볼륨을 높이면 온 식구는 귀를 막았다. 음악이 소음으로 바뀌면 큰딸은 아들 가까이 앉아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손주는 부드럽게 반주를 했다.
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치 애팔래치아 포크송같은 발라드로 부르면서 아들을 달랬다. 호주로 출장을 갔던 딸은 추수감사절 전날 밤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종일 운전해서 왔으니 피곤해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사내아이들의 소란에 제대로 쉬 지를 못했다.
그래도 아들과 동조를 맞추느라 피곤에 푸념 섞어서 부르던 재미난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손주가 중간중간 앰프의 볼륨을 높여서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매일 반복하면서 우리는 은연중에 손주가 창조한 차타누가 멜로디에 익숙해갔다. 켈틱노래를 닮았고 아일랜드의 들판을 누비는 바람소리를 닮은 멜로디가 손주의 손끝에서 하늘거렸다.
어린아이에게 좋은 명소는 어른에게도 좋았다. 낮에는 테네시 수족관, 록 시티 가든, Creative Discovery Museum, 보행자 전용인 Walnut Street Bridge로 테네시 강을 건너갔다 오고, 예술가 지역과 맛집을 찾아다녔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큰사위가 요리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수다판을 벌리다 뒤뜰에서 불꽃놀이도 했다.
보너스로 끼인 월드컵 축구는 흥을 보탰다. 영국출신인 둘째사위는 미국과 영국의 시합에서 미국을 응원하는 가족에 휩싸였다가 게임이 무승부로 끝난 바람에 우리는 깨끗한 뒤끝 파티를 했다. 특히 철도 박물관에서 기차를 타고 노스 폴을 방문하자 산타클로스가 기차에 올라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스피리트를 나눠줬다.
스코티쉬 춤을 추느라 두 발을 빠르게 움직이던 큰손주와 그렇게 못하니 웃옷을 벗고 바닥에 엎드려 브레이크댄스를 추던 작은손주, 기타치는 큰손주 옆에서 젓자락같은 공예 재료를 잡고 테이블을 두드려 대던 작은손주는 끊임없이 어른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겨줬다. 만나고 헤어지고. 행복과 감사로 풍성했던 멋진 추억들이 손주가 창작한 차타누가 멜로디에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