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장기적으로 한국 배터리 업계에 날개를 달아줄 거란 전망이 나왔다. 2025년 미국 시장 점유율이 70% 수준으로 올라가는 한편, 약 19조원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업·전문가 등이 참여한 ‘배터리 얼라이언스’ 산업경쟁력 분과 회의를 열었다. 지난달 출범한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민·관이 함께 이차전지 산업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자리다. 이번 회의에선 미국 IRA 관련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IRA는 8월 발효 이후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이슈가 크게 불거졌다. 연말엔 미 재무부의 하위규정(가이던스)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하위규정에 국내 업계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법 개정에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광물 공급망 다변화(광물 요건), 북미 배터리 공장 진출(부품 요건)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향후 구체적인 하위규정이 확정되면 이행 방안을 최대한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배터리 업체들은 IRA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투자 세액공제 제도에 주목하고 있다.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시 1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의 세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다. 배터리 모듈을 생산하면 10달러를 추가로 얹어준다. 청정제조시설 투자세액공제는 미국 내 배터리 제조 시설을 설치·확장할 때 투자액의 6~30%에 해당하는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업계에선 별다른 추가 조건 없이 공제 혜택을 모두 받으면 북미 공장 설립에 따른 초기 투자비용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의 기대감은 구체적 수치로 드러났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날 미 IRA로 인한 배터리 분야 성장 효과 등을 발표했다. 그는 IRA가 전기차 보조금, 세액 공제 등 여러 인센티브로 미국 전기차 시장을 확대하고 한국 배터리 수요도 끌어 올릴 것으로 봤다.
현재 미국 전기차 시장 비율은 EU(유럽연합), 중국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 잠재력은 높은 편이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에서 2025년 44%로 급증할 전망이다.
탈중국 공급망 정책이 빨라지면서 미국 내 전기차 수요 상당수는 국내 배터리 업계를 통해 채워진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6.5%에서 2025년 69%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이 같은 기간 11배 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 제도를 활용하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가 2025년까지 19조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회사가 미국에 건설하려는 공장의 총투자비가 약 40조원으로 추정되는 만큼 그 절반 가량을 공제받는 셈이다. 다만 이안나 연구원은 “세액공제의 구체적 지급 요건 등이 확정되지 않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이 장기 계약으로 핵심 광물을 미리 확보하고 배터리 공급망 수직계열화에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럴 경우 신생업체 등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강화할 전망이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미국 IRA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경쟁 기업보다 한발 앞서 대응하면 오히려 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