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필요로 했을 때 우리가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40여 년 만에 최악이라는 뉴욕주 북서부 버펄로의 눈폭풍 속에서 고립된 한국 관광객들을 도와준 알렉산더(치과의사)·안드레아(간호사) 캠파냐 부부는 자신들의 행동을 이렇게 얘기했다. 27일 집에서 만난 알렉산더는 “평균적인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승합차를 타고 워싱턴DC에서 출발해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던 한국 관광객 일행 10명은 버펄로 인근에서 차가 눈 쌓인 도랑에 빠지면서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 삽을 빌리러 눈보라를 맞으며 가까운 집을 찾아온 이들을 캠파냐 부부는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알렉산더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소라면 폭포까지 차로 40분 거리지만 그런 날씨에는 거의 다른 행성에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라며 “이들을 다시 도로로 내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눈보라가 주말 내내 잦아들지 않으면서 결국 관광객 일행은 2박 3일 동안 캠파냐 부부의 집에 머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일행은 이 지역을 강타한 겨울폭풍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7일 만난 알렉산더 캠파냐, 안드레아 캠파냐 부부는 눈폭풍 속에서 한국 관광객에게 베푼 선행을 두고 ″그들이 필요로 했을 때 우리가 있었을 뿐,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펄로=이광조 기자
캠파냐 부부의 환대 속에 한국 관광객 일행과 함께 보낸 이들의 ‘크리스마스 동거’는 뉴욕타임스에 처음 소개됐다. 이후 NBC와 ABC 등 방송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이날 오후에도 CNN과 생방송 인터뷰를 했다.
관광객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캠파냐 부부를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알렉산더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는 “오히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우리 부부”라고 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한국 관광객들은 캠파냐 부부가 눈폭풍에 대비해 미리 사들인 식자재와 자신들이 가져온 것을 더해 함께 요리를 만들었다. 부부의 냉장고에는 김치와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등 한국 요리 재료가 구비돼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인 안드레아는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한국 식당에서 했을 정도로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안드레아는 “요즘 한국 요리와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집중적으로 시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 사람들이 찾아온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2박 3일간 무사히 폭설을 피한 한국 관광객들이 눈이 멈춘 뒤 알렉산더 캠파냐와 함께 밖으로 나와 허리까지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알렉산더 캠파냐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캠파냐 부부는 이번 깜짝 방문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을 다음 행선지로 정하게 됐다. 알렉산더는 최근 동영상에서 본 한국의 길거리 음식, 특히 길거리 토스트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유명해진 것을 실감하냐’는 물음에 알렉산더는 “대학 동기였던 한국인 친구가 뉴스를 보고 나더러 ‘스타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걸 보니 그런 것 같다”면서 “하지만 진짜 감사받아야 할 이들은 지금도 수고하고 있는 소방관과 경찰관, 제설 작업자,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했다.
알렉산더는 한국 관광객 방문 중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자신이 응원하는 미 프로축구(NFL)팀 버펄로 빌스의 경기를 함께 시청한 것을 꼽았다. 그는 “우리 팀이 시카고 베어스를 꺾는 순간을 다 함께 지켜보며 응원했다. 10명의 국제적인 버펄로 빌스 팬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며 웃었다.
알렉산더 캠파냐가 폭설로 발이 묶인 한국인 관광객 9명을 포함한 10명을 집으로 맞아 크리스마스 휴가를 함께 보냈다. 알렉산더 캠파냐.
버펄로=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