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막바지다. 무사히 잘 지냈다고 가슴을 쓸어 내리니 올해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과거로 슬슬 사라진다. 어쩐지 올해는 비현실적인 생활을 한 듯한 착각이 들고 오페라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유행가 가사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해였다.
미국온 지 70년이 되는 남편은 외모는 동양인이라도 속은 서양사람이다. 그리고 한국서 살았던 세월의 근 두배를 미국에서 산 나도 남편과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함께 살면서 남편이 잘 하는 일은 남편이 하고 내가 잘 하는 일은 내가 하며 어느 한사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만사에 자유롭게 대처했던 우리가 올해 많이 변했다. 평소 자신을 잘 돌보던 남편이 소소한 일을 나에게 부탁했고 내가 해주면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남편의 엉뚱한 요구에 쉽게 응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무조건 들어줬다. 그의 불편이 해결되어서 남편이 편안하면 나도 좋고 그가 짜증을 내면 나는 불안했다.
몇 년 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머물던 어느날, 호텔에서 뷔페 아침을 먹을 적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손님들로 북적이지 않아서 조용한 분위기였다. 잠시 후 동양인 부부가 들어와 우리가 앉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야 이것 저것 맛있는 것 골라와” 퉁명스런 한국말에 내 귀가 쫑긋했다. 슬쩍 둘러보니 큰소리로 말을 한 50대쯤인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에 집중했고 비슷한 나이의 여자는 부지런히 음식을 담아 날랐다.
뷔페 테이블에 펼쳐진 음식에 눈길 한번 주지않고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남자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을 먹다가 가끔 “야 이건 맛없다. 뭐 다른 것 좀 가져와” 하면 여자는 냉큼 일어나 다른 음식을 가져오곤 했다. 손님들이 각자 자신의 음식을 가져와 먹는데 멀쩡한 남자가 앉아서 아내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조금 과하다 싶었다. 내 막내 동생을 연상시키는 남자의 배짱을 생각하며 나도 장난기가 동했다. 앞에 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는 남편을 보며 내 커피잔을 비웠다. 그리고 남편에게 “커피 한잔 가져다 줄래요?” 했더니 약간 머뭇거리던 남편이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뽑아와 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다고 했다. 집에서 어떻게 살더라도 여행지에서는 대충 자신의 일을 직접 처리하면 좋은데 그러지 않는 사람을 봐서 기분이 묘했다. 그때 그 부부를 보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두 한인부부를 떠올렸다. 걷다가 여러번 만나 한국말로 인사한 사람들이다. 보통 배낭을 메고 하루 20km 이상 걷고 나면 심신이 지친다. 숙소를 찾으면 우선 샤워부터 하고 그날 입었던 옷을 빨아서 빨랫줄에 걸고 기운을 차렸다. 자신의 옷과 남편의 옷을 빨래하는 한인 여인들을 보고 또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던 그들의 남편들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보기 힘든 정경은 그 다음이었다. 빨래를 마친 여자들은 다시 부지런히 저녁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쉴 틈이 없었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온 나를 부럽게 보던 그녀들과 인사하면 민망할 정도로 그들의 피곤이 겹겹이 나에게로 전해왔다. 자고 먹고 걷는 순례길의 일정에 그들은 남편의 몫까지 해결해야 하는 업무까지 짊어졌으니 그녀들의 순례길은 차라리 고행의 길 같았다. 한번은 그녀들과 대화하다가 남편을 집에 두고 나처럼 혼자 순례길에 나서면? 하고 물었더니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다. 한국의 세태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역할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차 한잔 가져오라는 남편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차를 끓여주는 나는 전에 내가 딱하다고 여겼던 여인들과 똑 같아져 있다. 다만 나는 나이 들어 통과의례로 거치는 변한 상황에 적응한다고 믿는다. 더불어 할 수 있을 적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갈 수 있을 적에 가고 싶은 곳을 가며 살려던 내 계획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제 내 하루는 더 이상 나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돌보고 내 등에 올라탄 남편 몫까지 책임지는 것이 힘들지만 앞으로 남편의 무게가 가벼워질까 두렵다. 새해의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