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한인회 결성이 공식 한인 이민 시작
도라빌-둘루스는 동남부 한인타운 중심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논스톱으로 가장 멀리 날아가는 도시인 애틀랜타. 조지아주의 주도이자 미국 동남부의 중심도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따뜻한 기후로 인해 한인은 물론, 미국인들도 북부로부터 계속 유입되고 있다.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한 조지아 한인 인구는 2021년 기준 약 9만3천662명(애틀랜타 총영사관 자료)이나, 유동인구 등을 합하면 12 ~15만 명에 이른다는 게 한인사회의 일반적인 추정이다. 한인 거주지역도 초창기 도라빌에서 둘루스로 확장된 데 이어 지금은 존스크릭, 스와니, 뷰포드지역까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스와니 H마트 인근 한인상가들. 중앙포토.
현재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한인타운이 위치한 둘루스와 스와니 지역이 포함된 귀넷 카운티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인구는 지난 2020년 US인구센서스 기준으로 2만5천816명으로, 10년 사이 무려25%가 늘었다.
한인사회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사바나에서 열린 현대 전기차 기공식은 조지아 주류 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 속에 진행됐다. 조지아 주 정부는 물론 주요 카운티나 도시들도 한인 관련 기념일을 잇달아 제정, 선포하고 있다. LA-뉴욕에 이은 미국 내 한인 거주지 ‘빅3’로 올라선 애틀랜타 한인사회 이민 역사를 주제별로 개괄해 본다.
아씨플라자 한인상가들. 중앙포토.
▶한인사회 태동
애틀랜타의 한인 이민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다. 윤치호 선생(1864~1945)을 애틀랜타 한인 이민 1호로 꼽는다. 그는 1888년 테네시 내슈빌 소재 밴더필트(Vanderbilt)대학에 입학하며, 미국 동남부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891년 에모리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애틀랜타에 3년간 체류했다.
이후 선교사와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1968년 10월 3일 디케이터(Decature) YMCA 회관에서 약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한인회 정관을 채택했다. 애틀랜타 한인회는 이날을 실질적인 이민의 시작으로 기념하고 있다.
1990년대 도라빌 인근 뷰포드길 선상의 한인타운 모습. 애틀랜타 히스토리 센터(Atlanta History Center)에 전시돼 있는 사진이다. 중앙포토 .
▶교회, 한인사회 구심점
이민사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애틀랜타 한인사회 역시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많았다. 애틀랜타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는 ‘애틀랜타 한인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는 1971년 1월 10일 문희석 초대 목사와 교인 약 20명이 에모리대학 캔들러(Candler) 신학교에서 초교파적으로 창립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한인 인구의 유입과 더불어 한인교회도 급속히 늘어나 2010년대 초반에는 조지아 소재 한인교회 수가 400여개에 이르렀다. 이를 정점으로 한인교회와 신도 비율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재미한인기독교선교재단(KCMUSA)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 조지아주에 한인 교회는 194개이며, 이는 한인 인구 283명당 한 개 꼴이다.
2021년 조사에서는 팬데믹 영향으로 조지아 한인 교회 수는 135개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인 교계는 연합장로교회를비롯, 애틀랜타 한인교회, 잔스클릭 한인교회, 제일장로교회 등 기존의 대형 교회와 함께 최근 배델교회, 프라미스교회 등 신흥 교회들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교회는 애틀랜타 한인 공동체이 구심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연합장로교회 시니어행복대학에 참여하고 있는 한인들. 연합장로교회 사진.
▶올림픽과 국적기 취항
흔히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을 지역 한인사회가 급성장하게 된 계기로 꼽는다. 그렇지만 이 무렵 대한항공이 애틀랜타~서울 항로를 개설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직항노선 개설이 올림픽과 더불어 한인 사회성장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여객기 취항은 애틀랜타 한인 인구증가 이외에도 한국 자본의 유입과 한국기업 지상사들의 개설 등으로 지역 한인 경제의 성장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 1994년 2만5천여명에 불과했던 애틀랜타 한인 인구는 2001년 5만여 명을 넘어섰다.
▶도라빌 시대 한인타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뷰포드 하이웨이를 중심으로 제과점, 미용실, 음식점 등 다양한 한인 업소들이 등장, 활기를 띠었다. 도라빌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한인업소는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1992년 말부터 한 달 평균 10여개씩 새로 생겨났고, 올림픽 직전에는 600여 개까지 늘어났으며 한인 상권은 지미 카터 길 선상까지 확대되어 갔다.
1990년대부터 도라빌 한인타운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도라빌의 한인 상가 몰. 중앙포토
한인타운이 번성하면서 최초의 지역 한인 은행인 훠스트 인터컨티넨탈 은행이 2001년 2월 14일 뷰포드 한인 타운에서 첫 영업을 시작했다. 동남부 최초의 한인 은행이었다. 메트로시티은행과 제일IC은행 본점도 이 지역에 터를 잡았다.
2000년대 이후 새로 개발된 둘루스 지역으로 한인 상권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도라빌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대형 한인도매상 1백여 개 등 뷰포드 선상은 여전히 한인 상권으로 성업 중이다.
도라빌은 조지아 애틀랜타 한인은행의 출발지이기도 했다. 사진은 도라빌의 제일IC은행 본점. 중앙포토.
▶둘루스한인마켓 경쟁
2004년 11월 둘루스에 진출한 수퍼 H마트는 애틀랜타를 비롯해 동남부 6개주의 한인 및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며 집중 관심을 받아왔다.
H마트는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둘루스를 한인타운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H마트는 현재 존스크릭, 스와니 등을 포함해 애틀랜타 일대에만 5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둘루스는 애틀랜타 한인상권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둘루스의 H마트 몰. 중앙포토.
2008년에는 경쟁사인 아씨프라자도 둘루스에 첫 매장을 개설했으며, 1년 뒤 스와니점도 오픈했다. 한국 농심그룹도 경쟁대열에 참여했다. 2010년 귀넷플레이스몰에 메가마트를 설립한 것이다. 둘루스 상가가 커지자 2017년엔 캘리포니아 자본의 시온마트도 참여했다.
이로써 H마트, 아씨플라자, 메가마트, 시온마트, 남대문 등 대형마트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한인타운을 발전시키고 있다.
둘루스 한인타운은 애틀랜타 중앙일보 등의 주요 한인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포토.
▶현대·기아 등 한국 기업 진출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자동차의 조지아 공장 설립은 지역 한인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은 2005년 5월에 준공됐다. 21억 달러 규모로 약 3천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연간 최대 39만대의 차량을 양산한다.
현대차는 지난 해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 로이터 사진.
2010년 2월 준공된 기아 조지아 공장은 웨스트포인트 시에 위치해 있다. 공장 건설에 약 10억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연간 30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기아는 최근 사바나 인근에 전기자동차 공장도 건설 중이다.
이 밖에도 미국 동남부지역에는 모두 236여개의 한국 기업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지아에는 SK배터리, 한화큐셀을 비롯해 무려 130여개의 한국기업이 있다. 이웃한 앨라배마에도 현대글로비스, 현대 모비스, 만도, 서연이화 등 60여개 업체가 있다. 이들 업체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조지아 공장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기아조지아 홈페이지 사진.
▶변화하는 한인 주력 업종
1970년 가발 수입으로 시작한 한인 자영업자들은 이후 식품점, 수퍼마켓, 보석 장신구, 의류,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갔다. 이후 세탁소, 주유소, 주류소매점, 뷰티서플라이 등 업종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그러나 2010년 전후 금융 위기와 함께 자영업자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주유소의 경우 거의 인도계 이민자 등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한때 한인들 직업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였던 세탁소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거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분위기다.
200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식품업계와 주류업계의 위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뷰티서플라이 업계는 예년보다 점포 수가 많이 줄어든 반면,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한인 전통 업종의 쇠퇴는 무엇보다 1세들의 가업을 물려받는 2세들이 줄어든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1세대들이 노령을 이유로 서서히 은퇴하고, 2세들은 보험이나 융자, 부동산 등으로 직업을 전환하고 있다. 또한 한인 특유의 교육열에 힘입어 의사나 변호사, 대기업 등으로의 진출도 크게 늘아나고 있는 추세다.
▶영욕의 한인회
초창기 애틀랜타 한인회는 다른 지역의 한인회보다 지역 한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비교적 순조롭게 운영되었다. 한인회장은 공식적으로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만, 복수 후보에 의한 투표로 한인회장이 선출된 것은 손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후보가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정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인회는 때론 무용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한인사회를 위한 굵직굵직한 일도 많이 성사시켰다. 우선 2세 한글 교육을 위해 애틀랜타 한글학교를 개설한 것이다. 1980년 김학봉 당시 한인회장은 9월 정기 이사회에 한국학교 건립안을 제출했고, 애틀랜타 총영사관에서 일부 예산 지원과 한인회 모금 활동 등을 통해 힘을 모았다.
뒤를 이은 박선근 한인회장은 이듬해 한국학교 창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초대 이사장 겸 교장으로 송종규씨를 선출했다.
애틀랜타 한인회는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한인회관에서 열린 2020년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식. 애틀랜타 한인회 사진.
한인회관 구입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 시작된 구입 염원은 1997년 22대 한인회(회장 이승남) 때에서야 이뤄졌다. 뷰포드 하이웨이에 위치한 한인회관은 대지 3.5에이커, 건평 1만 스퀘어피트 규모로 한인 모임과 화합 장소로 유용하게 활용됐다. 하지만 이 회관은 2013년 원인모를 화재로 인해 전소되면서 한인회는 졸지에 갈 곳을 잃었고, 한인사회 중요행사도 중단되었다.
취임 전부터 새 한인회관 마련에 그야말로 ‘올 인’ 했던 31대 오영록 회장은 결국 임기 중에 노크로스 한인회관을 매입,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새 한인회관은 지구촌에서 가장 큰 한인회관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구입 직후부터 부담스러운 유지비와 수리비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노크로스에 자리잡고 있는 애틀랜타 한인회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인회관으로 애틀랜타 한인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한인사회 세대교체
한인회나 민주평통, 한인상의, 옥타 등 한인 단체들의 젊은 세대 영입 활동이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미주동남부한인회엽합회 회장단의 바통 터치에 많은 지역한인들이 주목했다. 홍승원 30대 회장의 선출은 1.5세들의 전면 등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차세대들의 주류사회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해 11월 8일 중간선거에서 한인사회는 2명의 주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샘 박 의원(귀넷 107지구)은 4선으로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의 중책을 맡는 기염을 토했다. 홍수정 변호사도 재수 끝에 귀넷 103지구에서 공화당 최초의 한인여성 주 하원의원 배지를 달았다.
한인 단체들도 활발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 지난 해 동남부 한인연합회장으로 선출된 1.5세 홍승원 회장이 최병일 전임 회장으로부터 연합회기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윤지아 기자.
▶지역 축제 코리안 페스티벌
역대 한인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연임(28, 29대)한 은종국 회장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코리안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이다. 2009년 추석을 전후해 둘루스 시청 앞에서 처음 열린 축제에는 1만 명 이상의 한인 및 외국인들이 몰렸다. 알뜰살뜰 야외장터, 먹거리 장터, 비즈니스엑스포, 체험광장, 민속놀이 체험 및 대회 등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가 제공된 이 페스티벌은 주류사회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첫 행사로 기록됐다.
2015년부터 노크로스의 새 한인회관으로 옮겨 속개된 코리안 페스티벌은 지역 한인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규모는 계속 확대되어 2016년부터는 전야제 행사도 열렸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축제는 2021년 재개됐고 2022년 행사 때는 2만여 명이 참여, 지역 축제로 재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지난해 9월 치러진 코리안페스티벌은 한인과 지역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문화를 즐기는 다인종 축제로 호평을 받았다. 중앙포토.
▶한인사회 숙제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급성장하면서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아졌다.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에 놓인 단절도 그중 하나다. 미국 생활과는 직접 관계없는 한국 정치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며 보수-진보, 좌파-우파로 갈라진 갈등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서도 최근 한인들의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정치의식이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소수계 이민자로서 오랜 숙제인 정치력 신장과 주류사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파와 이념을 떠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이민 55년을 맞는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양적인 성장에 이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있는 과도기에 있다.
2023년 한인사회는 세대 단절과 정파 다툼을 극복하고 통합과 질적 도약을 이루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한인회관 내에 설치 예정인 제2소녀상. 중앙포토.
정리=권영일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