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보물인 400년 역사의 캐나다 퀘벡 시티의 겨울은 진정 윈터 원드랜드로 프랑스 문화를 품은 낭만적인 도시였다. 눈 덮인 환상적인 정경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멋진 유럽풍 거리들은 큰딸네의 초청을 받아들인 후부터 추위를 상상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완전히 잊게 했다.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어 놓고 가라’ 속담을 철저히 실행하는 나와 자신의 일상을 짊어지고 다니는 남편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실랑이를 벌렸다. 비행기를 여러번 갈아타니 필수품만 챙기자는 나의 잔소리를 묵살하고 남편은 가방에 노트북과 서류뭉치에 정크 우편물까지 틈이 없도록 꽉 채웠다. 가볍고 무거운 차림으로 우리는 몽고메리에서 워싱턴DC로 가서 큰딸네와 합세해서 토론토로 갔다.
미 대륙을 휩쓴 한파로 토론토에서 퀘벡 시티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된 바람에 토론토에서 하루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퀘벡 시티행 비행기가 모두 취소되어서 몬트리올로 가서 그곳에서 택시로 160마일 거리인 퀘벡 시티로 이동했다. 눈 덮인 들판과 눈보라에 시야가 흐릿한 길을 알제리아 출신 기사가 거침없이 차를 몰아서 두려웠지만 그는 우리를 무사히 목적지에 데려주고 몬트리올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위의 안내로 퀘벡의 역사와 고도시가 가진 활기찬 문화를 접했다. 개척 초기의 상황을 스토리로 담은 거대한 벽화가 시선을 끌었고 작은 성당 앞의 광장에 당당하던 루이 14세의 흉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름다웠다.
강변에 죽 늘어선 대포들도 프랑스 점령지를 영국이 쟁취한 사연을 들려줬고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조각상들이 도시를 건설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업적을, 그리고 퀘벡 문명박물관에서 원주민의 역사와 환경, 문화를 소개받고 초기 정착시절의 상황을 알게 됐다.
관광객으로 복잡한 좁은 거리에서 하프를 연주하던 하얀 머리의 노인, 작은 성당 입구에서 눈보라에 아랑곳없이 캐롤을 부르던 합창단, 연말 행사장의 텐트에서 호호 불며 공연하던 음악인들, 17세기에 프랑스 식민지의 토대를 만들고 퀘벡시를 세운 사뮈엘 드 샹플랭을 만났고, 350년 역사를 증언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초창기 퀘벡의 주교였던 프랑스와 드 라벨 성인께 인사했다.
유명한 초콜렛 가게 내부에 설치된 뮤지엄도 흥미로웠고 걷다가 지쳤을 적에 예전에 ‘성 매튜 성공회 교회’가 지역 작가의 이름을 딴 ‘클레어 마틴 도서관’으로 아름답게 변신한 곳에서 쉬었다.
사위가 사전에 예약해둔 유명 맛집들을 섭렵하는 재미도 톡톡했다. 프랑스식 식당에서 검은 나비 넥타이와 하얀 자켓을 입은 웨이터들이 테이블 옆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우리는 우아하게 달팽이 요리를 먹었고 그들이 스페인 특별 커피를 만드는 과정 또한 멋진 쇼였다.
신선한 지역산물로 채운 크레페는 멋진 아침이었고 오랫동안 원했던 완벽하게 요리된 비프 웰링턴에 행복했던 남편처럼 나도 이번에 상큼한 생굴을 욕심내어 많이 먹었다. 프랑스식 양파 수프가 추위를 떨쳐줬고 튀긴 감자에 치즈 커드와 그레이비를 얹은 푸틴도 맛있었다.
눈송이처럼 갈은 얼음에 굴린 메이플 태피를 먹는 재미 또한 대단했다. 한 맛집에서 ‘오 샹젤리제~~~’ 샹송을 들으면서 파리의 개선문 주위로 확 트인 광장에 퀘벡의 아기자기한 광장을 연결시켰다.
오감이 즐거운 일이 계속되면서 익숙해진 거리의 상점에서 특산품과 목재 스푼 악기를 구했고 남자들은 샤토 프롱트낙 호텔옆의 더퍼린 테라스에 1884년부터 겨울이면 운영하는 터보건 썰매를 탔다.
긴 썰매를 끌고 200피트 높이에 올라가서 40마일의 속도로 빠르게 언덕을 내려와 800 피트 거리로 이어지는 것을 손주는 비명을 지르며 즐겼다. 그 옆에서 딸과 나는 얼음덩이들이 떠내려가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둘러싼 그림같은 겨울 절경에 매혹당했다.
살아있는 역사장에서 받아들인 낯선 문화가 내 것이 되었고 많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며 찾아다닌 명소들과 손주와 벌린 눈 싸움, 눈밭에서 뛰어다니던 아이의 환한 얼굴, 빙판길에서 두번이나 넘어져서 걱정시키니 아예 내 손을 잡고 다닌 남편, 나는 남편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갤러리의 그림을 사진으로 담았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우노’ 카드게임을 즐긴 것, 또한 행복이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마주쳤던 자연재해와 인재로 변한 상황들은 도전이었지만 5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새해의 석양이 지는 것을 보면서 회상한 2주의 체험들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 같았다. 아름다운 추억이 된 겨울 교향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