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느끼는 건, 물가가 눈에 띄게 오른다, 북한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 환자가 급증한다, 고 술렁이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과 관계 없는 듯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변함 없이 국내는 물론, 해외 여행도 가며 취미와 문화생활을 즐기고 사는 것 같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내가 또 한 번의 문화 충격을 겪게 된 이유였다. 미국의 단조로운 생활과 달리 다양하게 격동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낯설어 잠시 주춤거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우리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 우리의 적응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식들은 성화다. 다른 부모들처럼 드러나게 오락이나 취미생활도 없는데다 집안에 있는 TV마저 잘 보지 않는 우리 부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곳을 여행도 하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건만, 애들은 규칙적인 취미생활을 강요하며 성화를 하더니 연말이 되자 유명 가수 콘서트 관람을 권유했다.
연말에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자 싶어, 우리 부부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공연은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넓은 곳에 빈 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관객들은 55주년 기념 콘서트 하는 가수의 팬들답게 나이 든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날 따라 혹독하게 추운 날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와 모자, 목도리로 극지방 사람들처럼 중무장을 하고 왔으니, 가수가 관객들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백발인 가수의 공연은, 가히 충격적일 만큼 정열적이었고 힘이 넘쳤으며 진지했다. 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은 마치 결전에 임한 장수처럼 결연했고 기상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듯한 노래는 그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의 마음마저도 움직이게 했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배경 무대는 독특하고 스펙터클했다.
대중을 압도하는 그의 카리스마도 대단했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은 무엇보다 관객들을 향한 그의 ‘진심’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찾아 온 손님을 정성을 다해 맞이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젊은이처럼 경기장 안을 한 바퀴 뛰며 관중과 가까이 하는 가수를 보며, 관객들도 젊은이처럼 마음껏 소리쳤다.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 가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콘서트는 모두가 흥겨운 잔치 마당이 되었다. 최선을 다한 가수의 공연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또 나이가 들었지만 절대로 늙지 않은 그에게 위로까지 받은 것 같았다.
넘치도록 풍성한 축제였다. 70대 중반이지만 청년 같았던 그의 모습은 부럽기만 했는데, 그도 노인인지라 내년에도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대 안과 밖을 펄펄 뛰며 노래를 하는 그에게도 세월은 ‘강적’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다.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구경’을 갔을 뿐이었는데 뜻밖으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멋쩍어 하는 답답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을 흥겹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백발인 가수의 절대로 늙지 않은 열정과 열심에 설득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수의 그 ‘열정과 열심’이 부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이 들면서 점점 감동과 흥겨움이 줄어드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는데 콘서트의 즐거움은 그런 걱정을 불식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 많은 사람에게 힘을 준 백발의 열정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