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와이팅이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서 누드로 촬영할 때 그들의 부모는 어디 있었나요. 핫세와 와이팅의 정신적·정서적 고통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어른은 감독이나 제작자가 아닌 바로 부모입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아동 복지에 대해 연구하는 나오미 쉐퍼 라일리 선임연구원이 지난 9일(현지시간) AEI 홈페이지 칼럼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법적으로 미성년인 배우의 노출 촬영은 부모가 동의해야 진행된다. 하지만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제작진이 미성년자 배우의 노출을 설득하면, 부모는 미래에 자녀가 받을 상처보다 부와 명예를 우선해 노출에 최종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앞서 70대가 된 핫세와 와이팅은 지난달 30일 10대 시절에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으며 성착취 및 아동학대를 당했다면서 제작사 파라마운트에게 5억 달러(약 620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촬영 당시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는 당시 두 배우에게 영화에 누드 촬영은 없을 것이고, 침실 장면에선 피부색 속옷을 입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촬영 당일엔 바디 메이크업을 한 채 노출한 상태로 찍었고, 누드 장면은 그대로 영화에 담겼다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영화 개봉 이후 55년간 정신적·정서적 고통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1968년 개봉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 모습. 줄리엣을 연기한 올리비아 핫세(왼쪽)와 레너드 와이팅. 당시 둘은 각각 15, 16세였다. 사진 SNS 캡처
미성년 배우나 모델이 부모의 결정에 따라 과도한 노출 촬영에 시달린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가디언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청춘스타 브룩 실즈가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실즈는 10세 때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에 실린 누드 사진을 찍었다. 11세 땐 영화 ‘프리티 베이비’(1978년)에서 성매매 소녀를 연기했고, 15세 때는 누드 사진과 성관계 장면으로 논란이 됐던 캘빈 클라인 광고, 16세엔 파격적인 나체 장면이 나온 영화 ‘블루 라군’(1980년)을 찍었다.
실즈의 엄마인 테리 실즈는 어린 딸에게 누드 사진과 누드 영화를 찍게 하면서 딸을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실즈는 엄마가 자신이 5개월 때 부유한 아버지와 이혼 후, 무일푼으로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노출 촬영에 정신적 고통이 컸던 실즈는 10세 때 촬영한 누드 사진 판매 금지 소송을 걸었는데, 항소심에서 패했다.
사진 작가 엄마를 둔 프랑스 배우이자 감독인 에바 이오네스코는 5세부터 엄마의 사진 모델이 됐다. 엄마는 이오네스코가 11세 때인 1976년, 딸의 나체 사진을 플레이보이에 실었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이오네스코는 성인이 된 후, 엄마와 오랜 법정 싸움을 했다. 그의 나이 47세였던 지난 2012년 법원으로부터 1만 유로(약 13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록밴드 너바나의 1991년 앨범 ‘네버마인드’ 표지. 사진 트위터 캡처
록밴드 너바나의 1991년 앨범 ‘네버마인드’ 표지에 생후 4개월 때 알몸이 실렸던 스펜서 엘든도 2021년 너바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해당 사진은 아동 포르노이며, 자신이 오랜 기간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촬영 대가로 200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소송은 지난해 초 답변 기일 만료를 이유로 기각됐다.
부모가 임의로 어린 자녀의 알몸을 대중 앞에 공개하는 사례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일반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소셜미디어(SNS)에 자녀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는 ‘셰어런팅(Sharenting)’이다. 셰어런팅이란 양육(parenting) 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공유(share)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무분별한 공유는 아이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특히 아이의 신체가 드러난 사진의 경우, 성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호주 사이버안전위원회가 호주 소아성도착증 범죄 사이트에서 발견한 사진의 절반가량이 부모가 직접 올린 SNS 사진이었다.
셰어런팅이 아동의 자기 결정권과 초상권 등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여겨지면서 해외에서는 관련 법적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자녀 본인의 동의 없이 SNS에 사진을 공유할 경우, 최대 1년 징역에 벌금 4만5000유로(약 6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베트남도 부모가 자녀의 사진 등을 본인 허락 없이 SNS에 올리면 최고 5000만 동(약 265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과도한 셰어런팅은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6년 오스트리아의 18세 소녀는 부모에게 SNS에 올린 어린 시절 자신의 알몸 사진과 배변 훈련 사진 등 500장을 지워달라고 거듭 부탁했으나 부모가 거절하자 고소했다.
같은 해 캐나다에서도 13세 소년이 나체 상태로 머리 위에 도넛을 올려놓는 등의 사진 수천장을 SNS에 올린 부모를 상대로 합의금 35만 캐나다달러(약 3억2000만원)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CBC와 인터뷰에서 “SNS에 있는 내 사진에 대해 나의 결정권이 없었다는 게 화난다”며 “이 사진들이 내 평판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아동 지원 단체 ‘페어플레이’에서 활동하는 레이첼 프란츠는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기록을 남기는 등 순수한 동기로 셰어런팅을 시작하는데, 자녀의 성장 발달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SNS 계정을 닫는 등 규제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