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해 유한한 인간 세상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별들이 사람들을 이 세상 너머의 세계로 높이 인도하고 이들로 하여금 정적 속에서 어떤 이름할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는가.’ 칸트의 묘비명은 그의 이런 사상을 집약한 것이다.
“곰곰이 거듭 생각할수록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할수록 점점 새롭고 더욱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이다.”시인 윤동주는 그의 ‘서시(序詩)’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노래해야지“라고 읊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는 식민지 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섬세한 영혼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인 이 작품은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과 그의 생애를 암시하고 상징한다. 이 시는 존재론적 고뇌를 투명한 서정성으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광복 후 혼란한 시대에 방황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삶은 그의 시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는 ‘양심의 수난자’였다. 그가 남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민족적·종교적·실존적 양심은 그의 삶을 이끌어간 힘이자 가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윤동주는 태어난 곳도 사후에 묻힌 곳도 조국 땅이 아니다. 그는 1917년 항일독립운동의 터전이었던 중국 간도에서 태어났다. 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다. 1942년 졸업 후, 그는 송몽규와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릿쿄 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유학시절 윤동주는 민족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고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한글 사용이 금지됐음에도 일본 땅 한복판에서 한글로 된 시를 썼다. 당연히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감시대상자로 지목된 송몽규와 그의 주변 인물을 일본 경찰이 1년 동안 감시하다가 둘을 잡아들였다.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수감된다. 1945년 2월 16일에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해방을 불과 반 년 앞두고 그는 스물일곱의 생애를 마쳤다.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윤동주 시인이 죽는 순간까지 염두에 두었던 단어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각종 의혹을 부인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을 앞세우고 나타난 그의 출두 장면은 피의자가 아니라 마치 개선장군인양 의기양양했다. 밖에서 연설을 한 이 대표는 막상 검찰 조사에서는 미리 준비해온 진술서를 제출하고 일부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수사받겠다”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대표가 떳떳하다면 민주당 전체를 방탄 정당으로 만들 이유도 없고, 묵비권을 행사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는 다시 한번 국민을 우롱했다.
공자가 길을 가다가 길가 숲에서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제자들에게 그 사람을 데리고 오도록 하여 호되게 꾸중을 했다.. 대변을 본 그 사람은 부끄러운 얼굴을 하며 얼굴을 싸매고 도망쳤다. 얼마 후, 이번에는 길 한 가운데에서 대변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자 공자는 저 사람을 피해서 가자고 했다. 제자들이 의아해 물었다. “스승님, 어찌하여 길 가운데에 똥을 싸는 저 자(者)를 피해 갑니까? 저 자는 길가에 똥을 싼 놈보다 더 나쁜 놈인데요.” 공자가 대답했다. “저 자는 아예 양심도 없는 자다. 길가에 똥을 싸는 자는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양심이라도 있으니 가르치면 되지만, 아예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자는 양심이라는 것이 없으니,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천하의 공자도 양심이 없는 인간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천하의 맹자도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근래 우리 사회는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싸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며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다짐한 시인의 순수함을 바라기엔 시대가 너무 탁해졌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부끄러움이란 우리의 근원을 향한 잊히지 않는 그리움’이라고 한 본회퍼의 말의 의미가 더욱 간절해진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