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의 도로는 어두웠다. 공항과의 거리로 일찍 서둘러야 하는 번거로움에 짜증이 날 만도 했지만 새벽공기의 차가움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도로를 가로지르며 다가올 낯선 체험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그 설레임은 평소와 다른 차가운 공기의 흐름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혼돈의 시작은 한통의 메시지였다. 탑승할 비행기의 캔슬. 더우기 우리 비행편만 캔슬된게 아니라는 걸 알자 머리가 아득해 졌다. 폭설과 결빙으로 인해 미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남편과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지. 우리는 일부러는 만들지 못할 기회를 잡아 보기로 했다. 어렴풋한 불안이 잠시 고개를 들었지만 어느새 기대감에 묻혀 버렸다. 결국 폭설이 내린 서북쪽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행선지를 바꾸고 우리는 뜻밖의 만남을 기대하며 들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즐거웠다. 몸도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올라 계획되지 않은 불편함은 그저 이색적이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은근한 매력을 과시하며 다가왔다. 당일 잡아야 하는 숙소를 고르는 일마저 피곤함이 아닌 재미있는 이벤트로 여겨졌고 다음 행선지를 고르는 일은 맛사탕 여럿 중 어느 것을 먼저 먹어볼까 하는 달큼한 설레임을 주었다. 삶이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로울 수 있음에 놀라며 이런 순간을 만든 우리 자신을 대견해 했다. 단 한가지 핸드폰을 계속 충전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단 한가지가 서서히 삐걱거리며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가면서 점점 짜증이 되었다.
마침내 하이 피크점을 찍은 사건은 엘에이에서 라스베가스로 넘어가는 국도에서 였다. 보통 4-5 시간이면 가는 길을 교통체증에 시달려서 장장 12시간이 걸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빨갛고 노란 불빛의 행렬은 쥐불놀이를 연상시키며 버스안의 사람들을 몰아대듯이 까맣고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사라지곤 했다. 지루하고 지친 아이들은 칭얼대며 울었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들의 소란스러움은 영화 매드맥스의 이해할수 없는 폭력을 연상케 했다. 캄캄한 하늘아래 끝 모를 불빛의 행렬속에서 우리는 버스안에 갇혀서 내리거나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작고 힘없는 존재였다. 이색적인 설레임은 공포가 되고 방랑자의 낭만은 갑자기 돌변할수 있는 폭력이 되어 다가왔다.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릴적 즐겼던 널뛰기가 생각났다. 하늘 높이 올랐다 바닥으로 내리꽂을 때의 그 스릴을 얼마나 좋아 했던가. 힘껏 판을 박차고 날아 오를 때 느꼈던 존재의 가벼운 자유로움, 내려올때 아랫배를 당기며 찌르르하던 무거운 추락의 환희. 그렇게 극명하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한 그 놀이가 좋았다. 그리고 다칠 수도 있음을 알면서 높다란 구름다리 철봉에 올라 아래로 뛰어내리기를 재밌어 했다. 그때 담벼락을 타고 뛰어넘다 나뭇가지에 찍혀 생긴 종아리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음을 잊고 있었다. 두려움속에 가려진 도약과 성취의 환희를 어린 나는 느끼고 있었을까?
아마도 어린 나는 두려움이 끝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야만 또다른 세상이 시작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일게다.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순수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도전을 지금 다시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어쩌면 넘실대는 거친 바다를 천진스럽게 건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삶의 참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운명애 (아모르 파티)라고 했던가 자신의 주어진 운명을 감싸안는 사람들에게 눈부신 찬사를 보내고 싶다.
라스베가스의 어두운 밤거리에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야멸차게 떠나버렸고 우리에게는 감기증세가 나타났다. 호텔방에서 콧물과 미열로 꽉 막혀서 꼬박 이틀을 앓고 코비드 검사 후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과 나는 안도의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 미소를 지었다. 하나의 미션을 마치고 새로운 장으로 넘어 온 듯한 뿌듯함을 나누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도전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동안 나에게 손이 많이 가는 짐이었던 우리집이 아늑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로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