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대전’ 확전우려에 무공 기밀 부쳐졌다 뒤늦게 공개
1952년 한반도 동해 상공에서 30여 분 만에 소련 전투기 4대를 격추하는 믿기지 않는 무공을 세운 미군 파일럿이 70년 만에 공훈을 제대로 인정받았다.
미 해군은 20일 캘리포니아주에서 기념식을 열고 이 전설적인 무용담의 주인공인 한국전 참전용사 로이스 윌리엄스(97)에게 해군 십자훈장(Navy Cross)을 수여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앞서 윌리엄스에게는 한국전쟁 기간이었던 1953년 5월 은성무공훈장이 주어진 바 있는데, 70년 만에 당시 무공을 재평가받고 해군에서 2번째로 높은 훈장을 받게 됐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훈장 등급 상향을 위해 검토한 많은 제안 중 윌리엄스의 사례가 단연 두드러졌다”며 “그의 행동이 특히 비범하고 더 높은 메달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고 말했다.
1952년 11월 18일 당시 27세였던 윌리엄스는 한국전에 참전해 미 해군의 제트 전투기인 F9F 팬서를 조종했다. 그날 윌리엄스는 동해상에서 작전 중이던 항공모함 오리스카니호에서 이륙해 다른 3명의 전투기 조종사와 함께 한반도 최북단인 압록강 인근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정찰대 대장이 전투기의 기계적인 문제로 호위기와 함께 기동대 본부로 돌아갔고, 상공에는 윌리엄스와 그의 호위 조종사만 남겨졌다. 그때 갑자기 소련의 미그-15 전투기 7대가 나타나 미 기동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 확인됐고, 기동대 지휘관들은 윌리엄스 등 2명의 조종사에게 미그기와 미 군함 사이에 전투기를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미 해군, 한국전 참전용사에 ‘십자훈장’ 수여. 해군 홈페이지 캡처.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그기 4대가 윌리엄스 쪽으로 돌아서 포격을 시작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이에 대응해 그 역시 미그기의 꼬리 부분에 발포했고, 소련 전투기 편대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윌리엄스는 2021년 미국 참전용사센터와 인터뷰에서 “당시 미그-15는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다”고 말했다. 소련 미그기가 미 제트기보다 더 빨랐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훈련한 대로 움직였고, 결국 그의 포격에 미그기 4대가 잇달아 격추됐다.
미 해군기념관 웹사이트의 교전 설명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당시 전투 과정에서 F9F가 휴대한 20mm 포탄 760발을 모두 쏘았다.
그가 몰던 전투기가 교전 끝에 항공모함에 가까스로 착륙한 뒤 해군 승무원들은 이 전투기에 263개의 포탄 구멍이 난 것을 확인했다.
그의 영웅적인 무용담은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대통령 면담까지 이뤄졌지만, 그의 공적은 기밀에 부쳐졌다. 이 사건이 미국과 소련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자칫 3차 세계대전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윌리엄스는 평생 이 얘기를 비밀로 하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2002년 기밀이 공식적으로 해제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이후 참전용사 단체들이 윌리엄스의 훈장 등급을 높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70년 만인 지난해 12월 미 해군이 십자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CNN은 “톰 크루즈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로이스 윌리엄스는 이미 현존하는 ‘탑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