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을 ‘중국 설’로 불러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억지와 댓글 테러가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음력 설을 아시아 전체의 명절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미국 내 한국 문화의 영향력 확대 때문인지 음력 설이라고 하면 한국을 떠올리는 분위기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음력 설의 새로운 경향’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설에 지인들과 파티를 하면서 겉절이김치를 만드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들의 사진을 머리에 올리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NYT는 베트남계 미국인들의 사례도 소개하는 등 음력 설은 아시아의 문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한국계 미국인들의 설 문화 소개에 상당한 비중을 뒀다.
물론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이 K-팝과 영화·드라마 등 한류(韓流)라는 대중문화 덕에 저절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미국 내 한인사회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음력 설이 중국만의 문화라는 오해가 쉽게 해소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 전날인 지난 21일 뉴저지주의 소도시 테너플라이에서는 한인학부모회 주최로 음력 설 축제가 열렸다.
‘설’이라는 한글 표시와 함께 ‘한국 문화 페스티벌’이라는 부제가 붙은 음력 설 축제는 한국계 미국인들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한국계 미국인뿐 아니라 다른 인종의 미국인 등 1천 명 이상의 시민이 참석했다.
특히 마크 진너 테너플라이 시장은 한복까지 차려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 한국 음식과 놀이 등 한국식 설 문화를 맘껏 즐긴 미국인들은 앞으로도 음력 설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복을 입고 음력 설 행사에 참석한 마크 진너 테너플라이 시장(중앙).테너플라이 KPA 제공
미국인 시장이 한복을 입고 설 행사에 참석한 이유는 역시 현지 한국계 미국인들의 영향력일 것이다.
유대계 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테너플라이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비율은 20%대로 알려졌다.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머릿수만으로 시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는 못미치는 셈이다.
그러나 테너플라이의 한국계 사회는 각종 지역 행사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다수 인종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대중문화의 확산과 한인 사회의 영향력 확대가 미국 주류 언론이 한국 설 문화를 다루고, 미국 정치인이 설에 한복을 착용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미국 사회에서의 음력설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한인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NYT가 한국계 미국인의 설 문화를 소개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 한국식 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됐지만, 정작 미국의 문화·경제 중심지인 뉴욕에 설치된 한국문화원은 음력 설과 관련한 행사를 주최하지 않았다.
한인 사회가 주최하는 음력 설 행사에 재외공관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테너플라이에서 음력 설 축제를 주최한 한인학부모회 관계자는 “미국 지역 정치인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현지에서 관심이 큰 행사에는 총영사 등 한국 외교관들이 직접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축사 등을 보내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력설 행사에 한국어 ‘설’을 명시한 포스터. 테너플라이 KP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