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에 남편은 큰 봉투를 하나 우편으로 받았다. 켄터키 주소를 가진 변호사가 보낸 서류는 남편의 친구 데이비드의 유언장이었다. 함께 첨부된 메디컬 문제에 대한 자세한 데이비드의 의사가 천명된 서류에는 켄터키주와 오하이오주의 법적 의료 대리인을 지정했다. 그의 누나가 첫번째 결정권자이고 다음이 조카, 그리고 내 남편이다.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데이비드의 의도를 남편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남편과 데이비드는 그만큼 각별한 사이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로 맺은 인연을 오랜 굴곡진 세월동안 서로 의지하며 단단하게 이어왔고 이제 80 문턱이라도 예전처럼 장난기를 가진 정신적인 청춘이다. 데이비드는 2살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부터 온 몸이 비틀려서 휠체어를 타는 불구자지만 독립의식이 강하고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현명함을 가졌다. 평생 그는 장애자를 위해 헌신하며 밝은 빛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공적으로 대통령 공로상까지 받은 남자다. 아내나 자식이 없으니 노후대책에 하나 있는 누나와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문제는 그나 그의 누나나 내 남편이 더 이상 예전처럼 사리분별에 냉철한 젊음이 아닌 현실이다.
작년 가을부터 데이비드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걸린 감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아 온갖 투정을 부리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남편에게 “그래도 내가 옆에 있으니 당신은 복 받은 남자” 하니 픽 웃었다. 사실 남편의 눈빛이나 얼굴 표정의 변함에 불안을 숨기고 사는 나는 데이비드의 최근 상황을 체크하지 못했다. 이번에 자신의 의도를 사전에 분명히 밝힌 데이비드의 서류를 보고나 서야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 중에 혼자 사는 남자들을 떠올렸다. 혼자 사는 여자 노인에게는 갖지 않은 좀 안스런 감정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면 겉으로는 잘 지낸다고 하지만 정작 혼자 사는 남자들의 표정은 오리무중 가늠하기 힘든다. 특히 남편과 가까이 지내는 두 지인은 내 남편처럼 빠르게 변한다. 허리와 다리의 통증으로 고통받는 지인은 지난 2년 수술을 여러번 받았다. 매번 아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의사를 방문하거나 병원을 다니는 부담을 떨쳐내느라 그는 최근에 딸이 있는 타지에 가서 병원치료를 받는다. 아무도 그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
그리고 펜실베니아 출신이지만 남부에 오랫동안 터줏대감으로 사는 지인은 요즘 비몽사몽하고 덩달아 어제와 오늘의 기억을 섞고 한 말을 계속 번복한다. 그가 병원에 갈 적에는 내 남편이 보호자가 된다. 오래전 그의 딸이 6살이었을 적에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 21 파인트의 피를 수혈 받고 살아난 후부터 그는 자신이 헌혈하겠다고 각오했다. 그의 딸은 이제 50대 중년이고 그는 아직도 2달에 한번씩 1 파인트, 근 2컵이 되는 혈액을 혈액은행에 기증한다. 아들은 서부에 딸은 북부에 살지만 무슨 연유인지 자식들의 방문이 없고 그도 자식 보러 가지 않는다. 그러니 훗날 이야기도 전혀 하지 않는다.
언젠가 자손들이 먼 곳에 사는 80대 지인이 무릎수술을 해야 하는데 날 더러 운전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물론이지요” 했다. 그와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 창구로 갔는데 그곳 직원이 서류 한 곳에 나의 사인을 요청했고 수술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 그날, 나는 지인의 임시 보호자였다. 그가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기고 그리고 병원에 며칠 머무는 동안 매일 그를 방문하며 도움을 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남편은 요즘 데이비드와 자주 연락하고 가까이 사는 지인과도 매일 대화를 한다. 청력이 약하니 스피커폰을 사용하는 그들의 대화는 소음이다. 수다꾼 남자들의 대화에는 알맹이가 없다. 진정 자신들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일을 중구난방으로 흘리고 질문이나 답 보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철로를 연상시킨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지 않는 철길 따라 두 늙은 남자가 휘청거리며 걷는 슬픈 그림을 본다.
혼자 사는데 익숙한 남자는 남에게 선뜻 도움을 청하지 않지만 막상 그들이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