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백건우·딸 진희 씨등 60여명 참석…고인 막내동생도 추모
영화배우 고(故)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30일 반평생을 살아온 프랑스 파리 인근 뱅센에서 영면에 들었다. 1960∼1970년대 한국 영화를 화려하게 수놓은 1세대 여배우 고 윤정희는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다 지난 19일 파리 외곽의 한 병원에서 79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고인의 배우자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와 하나뿐인 딸 진희(46) 씨, 진희 씨의 아들 등 유족은 이날 오전 뱅센 노트르담 성당에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진희 씨는 가족과 지인 등 60여명이 참석한 이 날 장례 미사에서 연단에 올라 프랑스어로 추도사를 낭독하기 전 흘러내리는 눈물을 몇 번이나 삼켰다.
고인의 친구 2명에 이어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진희 씨는 “나의 어머니는 나의 정신적인 구세주였다”며 “손을 놓아주겠으니 하늘에서 평안히 지내달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는 진희 씨는 2019년부터 파리 외곽 자택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는 고인을 돌봐왔다.
영화배우 고(故) 윤정희의 장례 미사가 열린 프랑스 파리 외곽 뱅센의 한 성당에서 고인의 유해가 담긴 목관이 나오고 있는 모습.
고인이 잠들어 있는 목관은 올리비에 포레의 레퀴엠 작품 48에 수록된 제7번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당에 들어와 지인들이 보낸 꽃으로 둘러싸인 안치대에 놓였다.
장례식은 고인의 손자이자 진희 씨의 아들이 목관 옆에 놓인 촛불에 불을 붙이며 시작됐고, 조문객들이 한명씩 앞으로 나와 관에 성수를 뿌리며 마무리했다.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이어진 미사가 끝나고 고인의 유해는 인근 화장터로 옮겨졌으며, 이날 오후 중으로 성당 인근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백건우는 운구차의 문이 닫히고 나서도 건드리면 눈물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봤고, 차가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날 장례 미사에는 딸 진희 씨와 성년후견인 소송으로 갈등을 겪던 고인의 막냇동생 손미현 씨도 장례 미사에 참석했으나, 백건우나 진희 씨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미현 씨는 연합뉴스와 만나 큰 언니의 별세 소식을 기사로 접했고, 장례식 장소와 시간도 스스로 알아보고 찾아왔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故윤정희 보낸 백건우 “죽음 받아들이는 것도 참 중요”
“우리가 삶을 받아들이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죽음을) 어떻게 아름답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영화배우 고(故) 윤정희의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77)는 30일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심경을 이같이 표현했다.
고인이 영면에 든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뱅센 묘지 앞에서 백건우는 “(고인이) 40년 이상 살았던 여기(뱅센)에서 본인이 원한대로 조용히 갈 수 있었다”며 “오늘 장례식이 조용히, 차분하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여배우를 존경해야 할 것 같다”며 “살아있는 사람을 존중하듯 죽은 사람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윤정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오른쪽)가 고인을 프랑스 파리 외곽 뱅센의 묘지에 안치한 뒤 딸 진희(46) 씨와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백건우는 이날 장례 미사에서 사용한 진혼곡을 직접 골랐다.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작품 48에 수록된 일곱 번째 곡 ‘낙원에서'(In Paradisum)다.
그는 이 곡에는 “천사가 이 사람을 천국으로 안내한다는 뜻”이 담겼다며 “(죽음이) 무겁고, 시커멓고,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희망 있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응한 백건우는 담담해 보였지만, 목소리는 깊게 잠겨있었다.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화장터로 떠날 때 한참을 바라보던 백건우의 왼손 약지에는 여전히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백건우는 고인을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에서 우연히 만났고, 고인이 2년 뒤 프랑스로 영화를 공부하러 유학 왔을 때 파리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76년 재불화가 이응노(1904∼1989) 화백의 자택에서 주변 지인만 초대한 채 고인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백건우는 47년 뒤에도 아내를 조용히 떠나보냈다.
이날 고인을 위한 장례 미사에는 백건우와 딸 진희(46) 씨 등 유족과 친지 외에 영화감독 이창동, 최재철 주프랑스 한국대사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장례식에는 유족과 친지 이외에 고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된 영화 ‘시(詩)’를 연출한 이창동 감독과 최재철 주프랑스 한국 대사, 이일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창동 “윤정희, 강렬한 존재감 지녔던 배우…함께 작품해 영광”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지난 28일 파리에 도착한 이 감독은 “윤 선생님은 영화배우로서 자의식, 정체성을 평생 잃지 않으셨던 분”이라며 “한국 영화사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이고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기억했다.
“평생 영화를 사랑해온 윤 선생님은 늘 열정적으로 영화를 해오셨습니다. 제 작품 ‘시’가 끝난 뒤에도 ’90살이 넘어도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셨죠. 심지어 병원에 계실 때도 영화 촬영을 나가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무의식 속에도 배우로서 정체성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 감독은 고인이 1960∼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1세대 여배우였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그 시대 톱스타로서, 여배우로서 이렇게 자의식, 정체성을 잃지 않은 건 윤 선생님이 최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선생님은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항상 기쁘게 생각하시며 인생을 늘 꿈꾸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 속에서 사셨던 내면의 예술가였다”며 “또 예술가의 아내이자, 예술가의 어머니라는 점에서 행복하게 사셨다”고 덧붙였다.
영화감독 이창동(오른쪽)이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뱅센의 성당에서 열린 고(故) 윤정희의 장례 미사가 끝나고 나서 유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이 감독은 ‘시’의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고인을 생각하고 썼으며, 고인 외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이것이 고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화 ‘시’의 주인공 이름은 ‘미자’로 고인의 본명(손미자)과 같다.
이 감독은 영화 ‘시’를 함께 만들기 전에는 고인과 자주 교류하지는 않았어도 영화제 등 행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평소에 만나보기 힘든, 소녀 같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나리오를 집필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어릴 때부터 스타로 알고 있던 윤 선생님과 영화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영광스러웠다”며 “윤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만난 것은 커다란 운이었고, 윤 선생님이 제 영화에 출연한 것 자체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시’는 10대 손자와 함께 살며 시를 배우기 시작한 60대 여성 ‘미자’가 헤쳐가는 삶을 풀어냈다. 고인의 1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었던 이 작품은 2010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각본상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