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이산화황 농도 짙어질수록 그림 더 흐릿해지고 색조 하얘져”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인상주의 작품의 특색인 몽롱한 하늘이 사실은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유럽의 대기를 표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소르본대 기상학연구소의 애나 올브라이트와 피터 하이버스 하버드대 지구행성학 교수가 인상파 화가인 윌리엄 터너와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 나타난 화풍과 색상 변화를 공기오염과 연결해 분석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진은 터너가 1796∼1850년에 그린 작품 60점과 모네가 1864∼1901년에 그린 작품 38점을 분석한 결과 당시 유럽의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서 두 화가의 작품도 점점 더 흐릿해졌다고 결론내렸다.
영국 태생의 터너(1775∼1851년)와 프랑스의 모네(1840∼1926년)는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던 18∼20세기 초반에 활동했다.
석탄을 연료로 태우는 공장들이 이산화황 등 오염물질을 뿜어냈고 대기에는 미세입자인 에어로졸이 가득했다.
에어로졸은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을 흡수하고 분산하는데 방사선이 분산되면 먼 곳에 있는 물체 간 명암과 색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물체 간 경계를 분별하기 어렵게 된다.
에어로졸은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을 흩어지게 만들어 낮에 색조와 빛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끌로드 모네의 1903년 작 선셋의 의사당
연구진은 터너와 모네의 그림에서 묘사한 사물의 윤곽이 배경과 비교해 얼마나 뚜렷한지를 수학모델을 활용해 분석했고, 대기에 이산화황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사물의 윤곽도 더 흐릿해졌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의 약 61%가 이산화황 농도 증가와 비례했다고 측정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더 강한 하얀 색조를 띠게 됐는데 이또한 대기 오염 증가와 연관지었다.
연구진이 그림 속 풍경의 가시성을 측정한 결과 터너가 1830년 전에 그린 작품에서는 가시성이 평균 25km지만 1830년 이후에는 평균 10km로 줄었다.
모네의 경우에도 초기 작품의 가시성은 평균 24km였지만, 이후 작품에서는 1km로 떨어지기도 했다.
연구진은 제임스 휘슬러, 귀스타브 카유보트, 카미유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등 다른 인상파 화가 4명의 작품 18점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더 흐릿한 윤곽과 더 하얀 색조로 바뀐 화풍은 대기 내 에어로졸 농도 증가로 예상되는 시각적 변화와 일치한다”며 “이런 결과는 터너와 모네의 작품이 산업혁명 당시 대기 환경 변화의 요소를 포착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모네가 대기 오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하려고 했다.
모네는 1900년 3월 4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안개”라며 “일어나서 단 한 조각의 안개도 없는 것을 보고 겁이 났다.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이제 내 작품은 모두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불이 들어왔고 연기와 연무가 돌아왔다”고 적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