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성형왕국이라고 한다. 우스개 말로는 한국인은 성형을 할 사람은 다 했으니 이제 외국인을 유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남녀노소 모두가 필요에 의해서 성형외과를 찾고 있다. 성형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외모를 중시하게 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것을 보면 성형은 이제 일반화가 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의 취향은 잘 모르지만 50~60대부터는 대부분 제일 먼저 주름이 지고 피부가 처지는 눈에 손을 댄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외모지상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나도 성형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 경우는 눈꺼풀이 나날이 처지더니 쌍꺼풀을 다 덮는 것도 모자라 눈을 덮으면서 눈이 작아진 것이다.
뭐 좋은 인물이라고 눈꺼풀까지 늘어지고 눈은 작아지나 싶고, 눈꺼풀이 속눈썹을 누르다 보니 답답하게 느껴져서 수술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때 눈썹 밑을 절개해 처진 눈꺼풀을 위로 당겨 잘라내어 교정하는 수술을 눈썹하거상술이라고 한단다.
주위에 몇 사람이 이 수술을 했고 훨씬 좋아진 것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아 친구한테 얘기를 꺼냈다. 친구가 “그냥 살지. 뭘 그런 걸 해. 그거 중산층이상이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서민은 하는 거 아닌데”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왜 웃냐고 하니 서민이 그런 걸 하고 싶다니까 우습단다. 무슨 이런 일에까지 그런 편가르기를 하나 싶었지만 수술에 대한 용기는 한 풀 꺾였다.
친구는 웃다가 “일산에 ㅇㅇ스 라는 병원이 잘한대.” 했다. 병원까지 추천을 받았지만 서민(?)임을 지적 받아서인지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처진 눈꺼풀 때문에 작아진 눈을 보면 당장 수술하고 싶고 어떤 날은 그냥 살지 싶기도 했다. 망설이다 보니 혹 수술이 잘못되어 이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움이 될까 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입을 딱 벌렸다. “아프다고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더니 병원 출입 좀 빤하다 싶으니 멀쩡한 눈을 째겠다며 또 병원에 가겠다고? 병원이 그렇게 좋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다그치는 듯한 대답이 섭섭했지만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없던 이야기로 하자니까 남편은 농담이었다며 “지금 보니 눈꺼풀이 너무 내려와 당신 눈이 잘 안 보인다(심한 과장이다) 이건 성형이라기 보다 교정이니 꼭 해야 된다” 며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일이라도 당장 해야 된다며 아주 신바람이 나 있는 것이었다.
도움이 될 줄 알았더니 남편에게 놀림감만 된 것이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남편이 돌아서서 딸에게 전화하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너희 엄마가 글쎄 병원에 가서 눈을 잘라 낸대. 아니, 눈 위, 눈 위” 하면서 숨 가쁘게 웃어 댄다. 에구, 눈을 자르다니? 끔찍하다. 그게 무슨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잘못된 것 바로잡는 수술하겠다는데 주위 사람이 이토록 숨 넘어 가도록 웃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람을 그토록 웃기고 있는 건가. 서민이 하면 안 되는 금단의 행위를 하는 게 너무나 주제 넘어서 웃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감은 점점 없어졌다.
결국 몇 달을 뜸을 들이다가 친구가 말해 준 병원을 찾아 갔다. 제법 큰 병원이었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말로만 듣던 청년층의 남자들이 많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보자 괜히 망설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위에 가득한 다수의 존재감 때문인지 수술에 대한 불안감도 희석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걱정과 갈등을 누르고 수술 날짜를 예약했다. 이왕에 결정한 일이니 비웃던(?) 사람들에게 성형이란, 서민에게 금지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수술이 잘 돼서 한국이 성형 왕국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비단 양적인 것뿐이 아니라 질적인 성형술의 발달을 의미한다는 것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