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한 달이 지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2023년이란 새로운 숫자를 마주하는 일은 아직도 낯설다.
얼마전 구정을 보내며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져서 속상했다. “언니야! 고향 생각 많이 나지?”하는 여동생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한국 떠나온 시간의 저울이 그 무게를 더해 갈수록 나에게 고향과 명절의 색은 바래 가고 있다. 감각도 무디어져 오래전 관습들마저 잊어가고 있다. 하지만 바랜 색들과 무디어지는 관습들은 어딘 가에 흘리고 온 소중한 물건처럼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무덤덤한 무관심이 한편으로는 펼치고 싶지 않은 깊어 가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겨울의 냉기를 삼킨 시린 하늘에 구름 떼들이 몰려와 그림을 그리다가 심술부리듯 한차례 소나기를 퍼붓고 달아났다. 그 자리에 잠시 나온 햇살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새벽에 꾼 꿈을 내 앞에 끌어 놓았다. 방 안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모여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성이는 내가 보였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한참을 서 있는 나를 안스럽게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 영상이 나를 우울의 늪속으로 밀어 넣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언제부터 인가 고향 생각에 그리움의 몸살을 앓고 있는 듯, 가족들과 북적이며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육신의 몸살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저 쪽에서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하겠지만 고국 떠나와서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그리워진다. 추억속의 소소한 것들이 대단한 일처럼 다가와서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낚시줄에 줄줄이 걸려서 올라오는 오징어처럼 내 안의 많은 색의 감정들이 올라와 명절 상위에 차려져 있다. 세월의 딱딱한 굳은살 속에 죽은 듯 묻혀 있던 기억들이 깨어나 그림을 그린다. 잊고 사는 오랜 친구들을 그려 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족들을, 풍경들을 그려 놓는다.
그림 속에 잠자던 귀소본능들이 잠재된 의식속에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나고, 또다시 사라진다. 아직도 길 잃은 사람처럼 꿈속을 헤매고 다니기도 한다. 그리움과 보고 픈 마음들로 쌓은 성문을 열고 오랜만에 한국 방문을 할 때면 반가움은 잠시, 빠른 변화들이 낯설게 느껴져 내 고향에 가서도 이방인이 된 느낌은 커져갔다. 떠나온 시간이 길어질 수록 모르고 살아가는 변화된 것들이 점점 나를 소외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타국에서 산다는 건 내 집이 있어도 영원한 셋방살이 느낌이 든다.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나무로 살 것 같다. 오랜 이민 생활을 하던 가까운 분이 70세가 다 된 나이에 한국으로 이사를 했다. 늘 자식 가까이 살겠다던 그 분은 나이가 들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자식들은 이미 이곳이 모국이며 한국은 타국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더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영어에 대한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고 몸이 아프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아파서 서러운 마음을 털어 내어 위로 받으며 치료받고 싶다고 했다. 내게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건지를 물었다. 아직은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불편함과 편함은 어디를 가도 있는 것이다. 살다 보니 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사는 동안은 내가 숨쉬며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끔 울컥하며 올라오는 그리움의 감정들도 나의 삶 일부로 받아들이며 충실한 오늘의 중심에 내가 있고 싶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마음이지만 내 고향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라고 되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