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꼴에서 자랄 때 고뿔에는 메밀국수에 고추가루를 넣어 맵게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땀을 흘리며 자고 일어나면 고뿔이 나았다. 그때 강원도 접경지인 충청도 산꼴에서는 감기를 고뿔이라고 불렀다.
방바닥을 새벽까지 오래 덥게 데우려면 고지박을 아궁에 태웠다. 고지박이란 썩어가는 소나무 그루터기인데 연탄불처럼 천천히 탔다. 그땐 메밀 국수를 집에서 만들었다. 메밀 가루를 반죽하여 치대다가 홍두깨로 밀고 홍두깨에 감아서 밀면 반죽이 평평한 종이상자처럼 펴지고, 그 위에 콩가루를 뿌려 접어서 칼로 썰면 그것이 메밀국수였다.
결혼하고 서울에서 살 때, 감기에 걸리면 산꼴에서 먹던 메밀 국수가 먹고 싶어 아내에게 메밀국수를 만들어 보라고 졸랐다. 아내는 그때까지 메밀국수 하면 메밀 냉면을 생각했고, 일본 음식 모리소바를 생각 했지만, 내가 산골에서 먹던 그런 메밀 국수는 맛볼 수 없어 막국수로 대신했다.
요즈음, 날씨가 춥고 으슬으슬할 때 갑자기 메밀 국수 생각이 났다. 한국 식품점에서 찾아보니, 곧고 길게 뽑아 말린 메밀국수도 있고, 메밀라면도 있고, 모리소바도 있다.
내가 살던 산꼴에선 호미 고기라고도 부른 양미리가 H 마트에 있었다. 새끼줄에 엮어 매단 양미리, 새끼줄이 아니라 노란 플라스틱 줄에 엮은 양미리가 보여 사왔다. 메밀라면에 양미리를 썰어 넣어 끓여서 고추장을 적당히 넣어 먹으니, 옛날 기억과 기분이 살아나서 너무 좋다. 감기 같은 것은 당장 멀리 도망 갈 것 같다.
친구 몇 분을 집으로 불러 양미리 메밀 국수를 나누어 보았다. 모두들 좋아하신다. 다른 일정이 있어 양미리 메밀 국수 맛을 못한 한 분, 그분도 보리고개를 충청도에서 경험한 분인데 양미리 메밀국수 기회를 아쉬워하시는 것 같아, 몇 분을 같이 초청했다. 막걸리 한잔과 양미리 메밀국수, 잊고 살던 고향의 옛 맛이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찾아온 반가움. 그 반가움이 나 혼자만의 것인지도 모른다.
메밀국수가 정말 감기에 좋은 처방일까? 건강에 좋은 음식일까? 메밀은 밀가루와 다른 성분이 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메밀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 섬유가 있다. 비타민도 여러 종류가 있다 (엽산, 나이아신, 판토테산, 리보콜라빈). 신경전달 물질도 들어있다 (나트륨, 칼륨). 미네랄도 여러 종류가 들어 있다 (칼슘, 구리, 망간, 인, 셀라늄, 아연).
메밀 속에 있다는 생소하고 이색적인 영양소들,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런 것들이 건강에 필수라는 상식도 몰랐다. 하지만, 내 몸이 메밀국수에 끌리던 이유 중에는 몸이 스스로 아는 몸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셀레늄이라는 미네랄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 것이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을 감소, 갑상선 호르몬 생성, 신진 대사와 정자 생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옛날에도 메밀 국수를 먹음으로 해서 몸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소를 얻었을 것이다.
밀가루음식이 맛도 있고 빠르게 혈당을 높여 힘든 육체노동 할 때는 도움이 되는 좋은 식재료 였음이 틀림없다. 육체노동을 적게 하는 시대가 되면서 체내 흡수가 쉽게 되는 탄수화물과 흰자질이 쉽게 지방으로 변해 비만의 문제도 되고, 밀가루의 높은 당지수는 췌장에 부담도 주어 당뇨병의 원인도 된다고 하니 헷갈린다. 가끔은 메밀국수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통풍이라는 병으로 발이 아픈데, 조사해보니 내가 먹는 음식조절이 그 병을 조절하는 한 방편이다. 전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물고기류에서 단백질을 얻다 보니, 양미리가 보였고, 그것은 배고파 보릿고개 넘던 1950년대 너무나 귀하고 생생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식재료였다. 양미리에는 불포화 지방산, 아미노산, 단백질, 칼슘이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따끈한 점심이 먹고 싶으면 10-20분에 양미리 메밀국수를 내가 뚝딱 만들어 먹는다. 무채나 깍두기, 김치나 채소 썬 것, 양미리 몇 마리 썬 것이 들은 냄비 물이 끓으면 메밀국수나 메밀라면을 넣어 끓인다. 특히 메밀과 무를 같이 먹으면 소화도 돕고 장의 독성을 제거하여 메밀국수나 냉면을 먹을 땐 무를 함께 먹으면 좋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