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아프거나 두려움이 밀려올 때 연락할 사람이 있습니까? 없다면 아마 당신은 지금 고독한 상태일 겁니다. 외로움은 담배만큼이나 몸에 해롭습니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만나자고 하세요. 당신의 건강과 행복은 이것에 달려있습니다.”
무려 84년 동안 ‘좋은 인생’의 비결을 좇은 연구가 있다. 1938년 하버드 의대 성인발달 연구팀은 당시 만 19세였던 하버드 학부 2학년생 268명을 모집했다. 이후 보스턴시 빈민가 지역의 10대 후반 456명을 추가해 모두 724명의 삶을 정기적으로 추적·관찰했다.
대조적인 두 집단의 삶은 저마다 흘러갔지만, 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재산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라는 것.
로버트 월딩어(72) 하버드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같은 연구 내용을 집대성해 지난달 책 『굿 라이프(The Good Life)』를 발간했다. 월딩어는 2005년부터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역대 네 번째 책임자다.
그는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인간 관계는 몸과 마음 모두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며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헬스클럽을 찾는 것처럼, 관계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관계, 정신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영향
연구팀은 두 집단의 건강 상태, 재산 규모, 가족·친구 관계, 종교, 정치 성향 등을 추적했다. 의료 기록, 재산 목록 등 자료를 수집하고 수백 건의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이후 이들의 자녀 중 1300여 명도 연구 대상에 포함했다. 방대한 연구 끝에 연구팀은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경우 더 건강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장·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고, 기억력과 면역체계도 좋았다. 그는 “처음엔 연구팀도 인간 관계가 심혈관 질환이나 관절염에 영향을 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며 “이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가설에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월딩어는 외로움이 흡연만큼이나 건강에 독(毒)이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중년은 코르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수치가 더 높았고 뇌 기능도 비교적 떨어졌다.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스트레스를 통제할 힘이 생기고, 이때문에 몸도 건강해진다는 게 가장 근거 있는 가설”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대상 중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은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편지를 써준 친구와 동료 군인 등을 꼽았다. 그는 “하버드의 연구는 미국 남성에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전 세계 다양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보고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돈·명예보다 질 좋은 인간관계가 더 중요
연구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보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또 소셜 네트워크(SNS)도 상호작용하는 데 사용된다면 행복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 월딩어는 주변에 먼저, 그리고 가볍게 다가가라고 조언한다. 그는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며 “정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마켓 계산원이나 버스 운전기사와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월딩어는 51년 아이오와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로스쿨 출신이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사업을 벌였지만 일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해야 행복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고 말했다.
연극을 좋아했던 그는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자질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진로를 바꿨다. 의대에 진학해 평소 관심 있던 정신 의학 분야에 발을 들인 그는 행복에 대한 연구를 20년 가까이 이끌고 있다. 그의 2015년 테드(TED) 강연은 조회 수 4400만을 넘기며 인기 강의 10위 안에 들었다.
김선미(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