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가 실어증 증상을 이유로 영화계에서 은퇴한 지 1년 만이다.
그의 가족들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성명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전두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다”면서 “아직 치료법이 없는 현실이 앞으로 몇 년 안에 바뀔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18일 대한치매학회 소속 신경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브루스 윌리스가 진단받은 전두측두엽 치매는 이름 그대로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서 발생한 치매를 말한다. 뇌 속에 있는 단백질(타우, TDP-43 등)이 뇌 신경세포를 훼손해 치매라는 신경퇴행성 질환을 일으킨 것이다.
흔히 치매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알츠하이머를 떠올린다. 물론 알츠하이머가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전두측두엽 치매도 비중이 5∼10%로 적지 않다.
이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비교해 발병 연령이 50∼65세 사이로 다소 이르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제 67세인 윌리스의 경우도 일반적인 알츠하이머 발병 연령에 견줘 비교적 치매가 빨리 왔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전두측두엽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은 실어증과 이상 행동이다.
이중 실어증은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뇌 중추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한다. 손상된 영역에 따라 ‘베르니케 실어증’과 ‘브로카 실어증’으로 나눈다.
베르니케 영역은 좌측 측두엽에 존재하며 이 부위가 망가지면 말은 하지만 의미가 없는 단어를 나열한다. 또 남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브로카 영역은 좌측 전두엽에 있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남의 말을 이해하긴 하지만 말을 하거나 쓰는 게 어렵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말수가 적어진다.
의학적으로는 말이 유창하게 잘 나오지 않거나 발음이 잘 안 되고, 문법의 오류가 많아지는 ‘비유창성 원발진행 실어증’과 아예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의미변이 원발진행 실어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어증 증상만으로는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이는 실어증 증상의 상당수가 치매보다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뇌졸중 치료를 받고 회복된 환자의 25~40%에서 실어증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외에도 뇌종양, 낙상, 교통사고와 같은 외상으로도 실어증이 올 수 있다. 예컨대 뇌에 종양이 생겼을 때 종양을 제거하면 주변부 언어중추가 눌려 손상되거나 해당 부분이 제거돼 실어증이 생기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치매융합연구센터 장혜민 교수(신경과)는 “전두측두엽 치매가 진행성 실어증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있는데, 알츠하이머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인 단기 기억력 저하는 초기에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다만, 이러다가 말기에 이르면 다른 인지기능도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환자들에게서는 실어증보다 이상 행동이 전두측두엽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으로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본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대한치매학회 이사장)는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는 일반적인 치매와 달리 사람을 의심하거나 대로변에 소변을 보고, 더럽고 깨끗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등의 이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환자들은 치매가 진행하면서 삼킴 장애가 생겨 일찍 사망하는 등 더 빨리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질환은 치매 중에서도 조기 진단이 어려운 미개척 분야에 속한다.
장 교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전두측두엽 치매는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다”면서 “초기에는 노화나 우울증과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증상이 좀 더 명확해지기를 기다리거나 뇌 MRI를 찍어 전두측두엽의 위축, 신경심리검사, 언어검사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진단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윌리스의 가족들이 “진단을 받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전두측두엽 치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더욱이 이 질환은 아직 치료제도 없는 실정이다.
양 교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증상을 늦추는 치료제가 개발돼 환자에게 쓰이고 있지만 전두측두엽 치매는 아직 연구가 부족해 치료제가 없다”면서 “환자의 증상에 따라 항우울제 등으로 이상 행동을 조절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치료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