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8)이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는 대신 고향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기로 한 가운데 각계에서 그의 인품과 업적에 대한 경의를 보내고 있다.
19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질 (바이든)과 나는 여러분(지미와 로잘린 카터,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사랑을 전한다”고 적었다.
이어 “어려운 시기에 보여준 강인함과 겸손함에 경의를 표한다”며 “품위와 존엄 속에 남은 여정을 이어가길, 신이 평화를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백악관도 전날 카터 전 대통령의 가족과 계속 연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4개월 후 조지아주 자택에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을 예방한 바 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질녀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카터 전 대통령이 “매일 인간애를 전진시켰다”고 존경심을 표시했다.
슈라이버는 “그는 영감을 준 분”이라면서 카터 전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공공 서비스에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진영과 정파를 초월해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초당적 경의 표시가 쏟아졌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전기작가인 크레이그 셜리는 카터 전 대통령의 지속적 업적으로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꼽았다.
카터 행정부가 중재한 이 협정으로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해 수십 년간 중동 갈등을 억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민주당 출신으로 재선에 나선 카터 전 대통령을 이겼다.
셜리는 보수색이 짙은 폭스방송에 출연해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해 “공직 생활에는 무수한 문제가 있었던 반면 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제2막을 보냈다”면서 퇴임 후 더 활발한 국제분쟁 중재와 봉사활동 등을 거론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1978년 9월 17일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로이터
민주당 실라 잭슨 리 하원의원(텍사스주)도 카터 전 대통령을 “미국의 보물이자 아이콘”이라며 그를 미국에서 가장 배려심이 깊은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그의 업적에 대한 인권활동가와 유명인사들의 헌사도 이어지고 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딸 버니스 킹 목사는 “사람들에 대한 카터 전 대통령의 사랑과 연민이 리더로서, 공직자로서, 또는 단순히 서로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위대한 남자로서의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경의를 표했다.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는 “지미 카터는 그간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친절하고 사려 깊은 이들 중 하나”라며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주지사를 역임한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 카터 센터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제임스 컬버트슨은 “아들들과 함께 카터 전 대통령에게 존경심을 표하려고 이곳을 찾았다”면서 “그가 특히 생애 후반에 얼마나 위대한 인도주의자였는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깨우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23년 2월 19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호스피스 케어 소식이 발표된 다음 날 스마일링 피넛 앞에서 두 명의 사회과 교사가 대통령의 날을 맞아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
플레인스 디포 역사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는 방문자들. 로이터
2월 19일 지미 카터 국립 역사 공원의 방문객들이 카터 전 대통령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다. 로이터
카터 전 대통령이 다니던 고향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도 주일인 이날 그에게 존경을 표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이후 수십년간 이 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으나 이날 처음으로 ‘결석’했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간암 발병 사실을 알린 2015년에도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나왔다.
카터 전 대통령의 질녀인 킴 풀러는 이날 교회에서 “난 무언가에 기여할 하나의 생명과 한 번의 기회를 가졌다. 나의 믿음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는 삼촌 카터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호스피스 케어가 발표되자 상점 밖에 생일 축하 인사가 내걸렸다. 로이터
카터 전 대통령이 1984년 합류한 국제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는 “우리는 그의 위로와 그들(가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다.
해비타트는 미국과 전세계에서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하는 단체다.
카터 전 대통령을 반세기 가까이 경호해온 미국 비밀경호국 대변인도 그를 기렸다. 비밀경호국 대변인은 소셜미디어에 “대통령님, 근심을 내려놓으세요”라면서 “우리는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직 연임에 실패한 그가 퇴임 후에는 노벨평화자 수상자로 인기가 오히려 높아진 덕에 마지막 남은 시간을 헌사 속에 보내게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에모리대 조지프 크레스피노 사학과 교수는 카터 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지 못했다며 불평하는 대신 정치적 지위에서 비롯된 영향력과 유명세로 수백만 명을 도왔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가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은 평화전도사로서의 그의 뛰어난 업적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역대 미 대통령 중 최장수인 카터 전 대통령은 흑색종(피부암 일종)이 간·뇌까지 전이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 전 대통령이 이끌어온 인권단체인 카터 센터는 성명에서 그가 가정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기로 했다면서 “남은 시간을 가정에서 가족과 보내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카터 센터는 트위터에서 “카터 전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한 모든 이들의 따뜻한 말들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호응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