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오는 4월 예정돼 있던 항공 마일리지 개편안 시행 시기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의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하면서다.
20일 대한항공은 “마일리지와 관련해 현재 제기되는 고객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마일리지 소진 방안 마련에 방점을 두고 세부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이어 아시아나항공과 조건부 기업 결합을 승인한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오자 한발 주춤하는 모양새다.
대한항공은 이번 마일리지 개편을 통해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거리’로 바꿀 계획이었다. 2019년 말 개편안을 발표했고 오는 4월 시행할 예정이었다. 현재는 국내선 1개와 동북아와 동남아, 서남아와 미주·구주·대양주 등 4개 국제선 지역별로 마일리지를 공제했지만, 앞으로는 운항 리에 비례해 국내선 1개와 국제선 10개로 기준을 세분화한다는 안이었다.
가령 인천∼뉴욕 구간의 프레스티지석을 보너스 항공권으로 구매하려면 종전에는 편도 6만2500마일이 필요했지만, 개편안이 시행되면 9만 마일이 필요하다. 일부 노선에서는 공제 마일리지가 줄어든다. 편도 기준으로 인천~하와이 3만5000→3만2500마일, 인천~후쿠오카 1만5000→1만 마일 등이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적립률 일부 하향 조정안은 22년 만에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했다며 비난 여론이 불거졌다. 특히 저비용항공사(LCC)가 운항하지 않는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마일리지 공제율이 높아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마일리지로 프랑스 파리를 가려다 인도네시아 발리도 못 갈 판이라는 원성이 나온다”며 “단거리는 LCC 티켓이 더욱 저렴해 소비자 입장에서 효용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소비자 단체는 교보문고에서 책 1만원을 마일리지로 구매하면 1마일리지 가치는 7원으로, 인천~뉴욕 일등석(91원)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며 일부 사용처를 늘린 경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배창석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여행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마일리지로 좌석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불만이 지속해서 나온다”며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쉽게 살 수 있는 대응책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까지 마일리지 개편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압박에 나서자 대한항공은 결국 개편안 개선을 결정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날 국회에서 “(마일리지) 약관 공정성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날 “(코로나19 이후)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국민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재차 비판했다.
개편안 재검토에 따라 새 마일리지 시행도 사실상 연기됐다. 대한항공은 아직 연기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공제율을 조정한다면 4월까지 개선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한항공은 향후 마일리지 공제율과 적립률을 조정하고, 마일리지로 구매하는 보너스 좌석 확대 규모도 늘릴 것으로 보인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