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애틀란타에는 7개 정도의 노인들을 위한 시니어센터가 있다. 시니어센터는 즐거운 곳이다. 시니어센터에는 따듯한 사랑이 있고 웃음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운동, 노래, 게임 ,취미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노인들을 즐겁게 해준다. 노인들의 까다로운 입맛 돋구는 음식은 또 어떤가. 그래서 심심할 틈이 없다.
운동 중에 파워워킹은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다. 운동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열에 낀다. 파워워킹은 걷기와 달리기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결합시킨 걷기운동으로 실내에서도 영상을 통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운동과 춤을 믹스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강사를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2마일을 걷게 된다. 흔들흔들 무작정 걷는 것보다 훨씬 좋다. 신나는 파워워킹을 하면서 나는 중국에서 인기있는 집단무용을 떠올린다.
중국의 공원과 광장에선 아침저녁으로 중년 여성들이 동네 공원이나 광장에 모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요란한 춤판이 벌어진다. 이른바 광장춤,(廣場舞)이다. 적게는 수십 명이, 많게는 수백 명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절도 있게 춤을 추는 광경은 중국의 또다른 볼거리다.
광장춤의 주역은 단연 50대 이상의 여인들이다. 중국에선 이들을 따마(大媽)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아줌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의 평범한 아줌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무대뽀 아줌마들이다.
요란하게 광장춤을 추는 따마. 그들은 누구인가. 광장춤에는 홍위병의 비극이 담겨있다. 1959년 마오쩌둥은 이른바 대약진운동을 벌인다. 중국을 단시일 내에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실패하면서 마오쩌둥은 2선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그냥 물러날 인물이 아니다. 마오쩌둥은 실권을 되찾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봉건 잔재와 자본주의 추종자들이 청산되지 않아 대약진운동이 실패한 것이니 옛것은 모조리 숙청하라는 것이다. 마오는 어린 홍위병들에게 이렇게 선동했다. “옛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심지어 너희들 부모들까지…”
다음은 한 홍위병의 증언이다. “1970년 2월 13일 나는 16살이었다. 그날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지도자를 개인숭배해서는 안된다. 마오 주석이 잘못하고 있다며 내게 훈계를 했다. 순간 나는 내 앞의 여인이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인민의 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어머니의 발언 내용이 담긴 편지를 써서 군당국에 고발했다. 어머니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2개월 뒤 어머니는 반혁명분자로 몰려 총살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남녀평등을 내세운 덕분에 홍위병에는 특히 여학생들이 많았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대략 2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홍위병의 세력이 커지자 위협을 느낀 마오쩌둥은 홍위병들에게 이제는 도시에서 혁명이 끝났으니 농촌을 개혁해야 한다며 ‘하방운동’을 벌인다. 순진한 학생들은 마오쩌중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다시 우르르 시골로 내려갔다.
이로써 홍위병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학교를 폐쇄했으니 홍위병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정도의 학력에 머물게 되었다. 학교 공부 대신 공산이념과 선전도구로 이용당한 홍위병들은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후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오쩌둥 이후 덩샤오핑은 점차 자본주의와 개혁개방정책을 펼쳤고, 그로 인해 국영기업들은 민영화되었다. 홍위병들이 30-40대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주로 국영기업에서 일하던 구 홍위병들의 대규모 실직으로 이어지게 된다. 민영기업에서는 고작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여성들이 설 공간이 없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따마들은 점점 집 근처 공원이나 광장에 모이게 된다. 그들이 홍위병 시절에 모이던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어놓고 집단무용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따마들에게 광장춤은 유일한 위안이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정신적인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지금 따마들은 ‘무대뽀 아줌마’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광장춤 역시 구시대의 잔재이자 노인들의 시끄러운 오락 정도로 무시당하고 있다. 그래서 따마들은 외롭다. 자신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