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손주가 보낸 카드에서 화사한 나비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늘 배고픈 애벌레 같은 손주가 나비로 변신했나? 하고 나비를 손바닥에 올려서 자세히 봤다. 종이를 오려 붙이고 밝은 색깔로 디자인을 하느라 정성을 들인 손주의 아름다운 마음이 내 가슴에 나비로 날라와 안겼다.
그리고 카드 속에는 약간 구겨진 100불짜리 지폐가 하나 들어 있었다. 돈을 들고 갸웃했지만 그것은 딸이 넣은 것인가? 하고 별로 생각없이 잊어버렸다. 그런데 주말에 화상통화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네가 만들어 보낸 나비가 무척 예쁘다” 했더니 손주가 돈도 받았느냐고 물었다. 자기의 저금통에서 꺼내서 보내준 것이라며 “할머니는 돈이 없으니 이 돈을 시작으로 저금통을 만들고 앞으로 저축 많이 하세요.” 당부했다. 맙소사.
우리집 리빙룸 테이블에 돼지저금통이 하나 있다. 작년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면서 손주가 누구 것이냐고 물었을 적에 할아버지가 주머니에 동전이 생기면 넣는다고 했더니 오케이 했다. 그때 작은 아이의 마음속에는 할머니의 저금통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낭비하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경제관념은 부모에게서 받은 교육 탓이고 저금통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다. 이렇게 손주에게서 카드를 받고 보니 예전에 큰딸이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들이 생각났다.
큰딸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하며 영어를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위해서 열심히 한글을 배웠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또박또박 한글로 편지를 쓰고 그 후로도 꾸준히 정성스런 안부 편지와 아름다운 카드로 할머니를 찾았다.
자신의 대학생활 활동을 전해주고 직장인이 되면서 체험하는 여러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에 대한 속마음을 할머니에게 열었고 또한 여러 여행지에서 자신이 본 낯선 지역을 할머니에게 소개하고 매번 할머니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편지를 마쳤다.
손녀와 할머니의 아름다운 사랑 나누기였다. 손녀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시며 행복하시던 내 어머니가 생각난다. 퉁명스런 나보다 다정다감하게 내 어머니에게 기쁨을 준 딸이다. 그 딸의 아이가 이제 나에게 카드를 보냈다.
11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적에 올케가 어머니 방을 정리하면서 어머니 책상서랍에 간직된 많은 편지와 카드를 보여주며 “이것을 어떻게 하죠?” 하자 나는 딸이 보낸 사랑의 증언을 모두 덥석 잡아서 우리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보낸 손녀의 사랑 고백이 귀여워서 가끔 딸이 쓴 편지를 읽는다.
그 중에는 애틀랜타 데일리뉴스 2005년 1월15일자에 실린 내가 처음 한글로 쓴 글을 온라인에서 보고 프린트해서 할머니에게 기쁜 소식이라며 보낸 것도 있다. 그리고 “할머니를 감사할 이유들이 평생동안 천만백 가지를 넘습니다.” 선언한 할머니를 사랑한 딸의 애틋함에 눈가를 닦는다. 그리고 나도 내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내 기억을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쓴 적이 없다. 어린시절 대구에 살았다. 외가가 별로 멀지 않았고 할머니는 외숙모의 구박을 받으시며 골방에서 목소리를 잃고 조용히 사셨다. 가끔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를 찾아갔다가 그런 할머니를 뵙고 올 적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선가 내 자발적으로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찾아간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의 할머니 사랑이 딸보다 모자랐던 것은 아닌데 그 당시는 할머니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다. 할머니를 보면 고개 숙여 인사했지 할머니의 품에 안긴 적이 없고 더구나 할머니께 사랑한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해 본적이 없다.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하시면 “네” 한 것이 우리의 사랑 나눔이었다. 왜 그렇게 감정에 냉정하게 굴었는지 후회 막심하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선사하고 찬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발렌타인데이가 있는 2월은 아름답다.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가슴을 꽉 채우는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사랑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이다. “사랑해요”한 손주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나도 할머니를 껴안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할머니 사랑해요. 무척 뵙고 싶어요”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