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교회에 나오는 여자분의 시어머니가 74세에 별세하여, 한인 교인들 몇 명이 장례식에 갔다. 돌아가신 분은 흑인으로 그분이 다니시던 갈보리 침례교회에서 영결식이 있었다. 50여명의 흑인 교인들이 참가한 장례식은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축제 분위기였다. 장례식이라면 슬프고, 엄숙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익숙한 한인들은 가볍고, 즐겁고, 밝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다. 오하이오 살 때였다.
교회에 들어섰을 때 강단 앞에 뚜껑을 열어 놓은 관 안에는 화장을 곱게 한 흑인 할머니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설교 단 위에서 3명의 남자 3명의 여자가 치어리더처럼 찬송과 율동을 리드하고, 교인 석의 50여명의 흑인들이 전부 일어나 찬송을 부르며 손을 들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 일세/ 내가 누릴 영광 일세/ 은혜로 구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 일세” 그 찬송을 영어로 불렀다. 높고 밝고 신나는 화음으로 소리 내며 온 몸으로 율동 하며 손뼉을 치며 어깨를 으쓱으쓱, 허리와 엉덩이를 출렁출렁 율동 하며 찬양을 했다. 영결 예배 라면 엄숙하고 슬픈 것에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생판 다른 경험이었다.
목사님이 성경을 읽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 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몸집이 우람한 흑인 여성이 단위에 나와 조가를 불렀다. (God will take care of you, through every day, over all the way)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너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소프라노의 높고 고운 음성, 풍부한 음량, 이건 조가가 아니라, 찬미가였다. 노래하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 밝고 명랑하며 소절의 끝 마디마다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흑인들 특유의 영가풍의 목소리, 교단 옆에 앉은 고인의 친척들과 앞 좌석에 않은 교인들은 허밍으로 따라 부르고, 몸짓으로 율동 했다. 누구의 얼굴에도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기색은 없고 모두 생동감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며 기쁨이 얼굴과 전신에서 분출했다.
영결 예배 안내 쪽지를 보았다. “Homegoing Service of Sis. Helen Brown.” 헬렌 브라운 자매 본향 집 가는 예배.” 영결 예배가 아니라, 본향 집 가는 예배라고 써 있다. 영결식 하면 영원한 이별로 보내는 사람의 입장이고, 본향 집에 가는 예배하면 가는 분의 입장에서 한 많은 이세상을 타관 객지에서 살다가 이제 즐거운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초상집에는 상주들의 애도의 슬픈 울음 소리가 나야 되는 전통 속에 우린 살았고, 지금도 중국에는 슬픈 애도의 곡 소리를 내기 위해 전문 장송곡 가수들을 고용해서 초상 집에는 곡 소리가 끊이지 않는 전통을 지켜 간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
기독교에 관한 많은 책을 쓴 필립 얀시의 책 속에 흑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백인들과 다르다고 쓴 구절을 읽었다. 그의 아내 제냇은 시카고의 빈민 지역 양로원에서 일을 했고, 그녀가 돌보는 노인들은 흑백이 반반이었다고 한다. 양로원에서 늙어가며 죽음에 더 가까이 갈수록 백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반면, 흑인들은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를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근심하지 않는 성향을 발견했다고 한다.
“토요일은 모리와 함께” 라는 책이 한 때 베스트셀러였다. 책 속 주인공인 모리 교수가 루게릭 병이 들어 치료방법이 없이 신경이 죽어가는 병을 앓으며 자신이 1년안에 죽는 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친구의 장례식에 가 보고, 자신의 장례식을 생각하다가, 자신의 장례식은 죽은 다음에 하기보다 죽기 전에 해보기로 결단했다. 어느 추운 토요일 저녁에 친구와 친척들을 모아 자신의 장례식을 치렀다. 감동적인 장례식,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찬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렀다.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계속 늘어난다.
장례문화도 다양하고 새로운 장례형식도 창조되고 있다.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늙어 가면서 변하는 것 같다. 겁나고 검고 부정적인 부분이 차츰 피할 수 없고 밝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나의 장례식은 어떤 식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