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공무원으로 복무…”이 나라에 머물 자격 있다 생각해”
국경에서 일하며 수년간 불법 이주자를 추방했던 전직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불법 이주자가 돼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고 CNN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텍사스주에 사는 라울 로드리게스(54)는 관세국경보호국(CBP)에서 거의 20년간 일하며 불법 이민자 수천 명을 미국 땅에서 쫓아냈다.
CBP와 그 전신인 이민귀화국에서 일하기 전에 미 해군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로드리게스는 조국인 미국을 위해 일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그에게 삶 자체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각은 2018년 4월 연방 수사관들이 로드리게스가 멕시코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아버지는 로드리게스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지만, 그가 사실은 멕시코에서 태어났고 그가 사용해온 미국 출생증명서는 가짜라고 실토했다.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사람’에서 ‘쫓겨나야 할 사람’이 된 로드리게스의 상황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조사를 받는 동안 휴가를 내도록 조처됐고, 결국 2019년에 해고됐다. CBP는 그가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더는 CBP에서 일할 수 없다고 통지했다.
로드리게스는 그 이후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수입은 미 해군에서 복무할 때 머리를 다쳐 다달이 나오는 ‘장애 수당’뿐이다.
해군 시절 해외에서 복무한 경험까지 있는 그는 이제 추방 위험에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로드리게스의 부인 아니타는 “그는 미국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이제 그는 집 뒷마당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 이민청(INM) 건물 앞에서 미국 이민 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이주민들. 로이터
CBP에서 만난 동료들은 그의 곁을 떠났고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저녁 식사 초대까지 하며 지냈던 이웃까지 등을 돌렸다.
로드리게스는 “그들은 나를 ‘불법’이라고 생각해 나를 버렸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대가”라며 로드리게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낯선 사람이었다.
텍사스주 엘파소의 ‘애국자 송환 단체’에서 해외로 강제 추방된 퇴역군인들을 다시 입국시킬 수 있도록 돕는 다이앤 베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국의 이민 정책이 얼마나 냉혹하고 복잡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해 왔던 베가도 로드리게스의 사연을 읽었을 때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베가는 “미국에서 태어난 줄로만 알았고, 미국에서 자랐으며, 미국 군대와 정부에서 일한 사람이 한순간에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베가와 그의 단체는 텍사스주 의원들에게 로드리게스의 사연을 알렸다. 또 또 그가 미 재향군인부(VA)에 등록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드리게스는 작년 11월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상황을 소명했고, 재판부는 그의 추방 취소를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방 처분 취소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지만, 이런 경우에 대한 영주권 발급은 매년 4천 건에 한정돼 있어 수년을 기다려야 할 수 있다.
매일 이민 법원 웹사이트를 확인한다는 로드리게스는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다”며 “나는 내가 무언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나라에 머물 기회는”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