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2)
조지아주의 스톤마운틴은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오는 공원이다. 애틀란타 둘루스에 있는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다시 가보고 싶도록 마음을 잡아끄는 바위산이다. 스톤마운틴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느낌, 어마어마한 돌덩이가 쿵! 내 앞에 떨어진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바라본 애틀랜타 도심의 빌딩들이 우주로 떠나며 바라보는 지구의 마지막 모습처럼 아련하고 쓸쓸하게 보였던 것도 스톤마운틴이 먼 우주에서 지구에 내려앉은 우주선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스톤마운틴이 쩍 갈라져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외계인들이 걸어 나와 하이! 인사를 건넬지도 모르겠다.
(A Stone For Sascha) 이 그림책은 어릴 적 무심히 불렀던 ‘바윗돌 깨뜨려’라는 동요의 가사를 곱씹게 만드는 이야기다. 거대한 바윗돌이 시간의 흐름 속에 구르고 깎이고 다듬어지다 작은 돌멩이가 되어 한 소녀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켜켜이 쌓인 이야기는 무한한 인간의 진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림책 작가 애런 베커는 돌멩이에 담긴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넘어서 시간 속에서 순환되는 삶과 죽음의 주제까지 그려낸다. 책을 펼치면 한 소녀가 들판에서 꽃을 꺾고 있고 들판 저 너머에는 가족들이 작은 무덤 앞에 서있다. 소녀는 꺾어온 꽃을 무덤 위에 올리고 고개 숙여 흐느낀다. 그리고 가족은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바닷가에서 소녀는 하늘을 향해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
다음 이야기는 우주에서 불기둥을 타고 운석이 날아와 땅에 부딪혀 공룡들이 죽고 바다가 소용돌이치는 장면으로 갑자기 바뀐다. 시간이 흐른 후 운석은 원시부족에 의해 높은 산으로 옮겨져 숭배의 대상이 되고, 다시 양치기 무리에 의해 운반되고 다듬어져 오벨리스크가 된다. 시간이 흘러 전쟁으로 파괴된 오벨리스크 조각은 불상의 가슴에 장식되었다가 다리의 아치에 끼워졌다가 황폐화된 빈터에서 뒹군다. 또 시간은 흐르고 조각할 적당한 돌덩이를 찾던 석공의 손에서 예술품으로 탄생한 돌은 바다를 건너온 외국상인에게 팔려 섬나라 부족민의 상징물이 된다. 하지만 밤사이 마을은 불태워지고 해적에게 도난당한 돌은 항해하다 폭풍우 치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또 다시 세월은 흐르고 흘러 해변으로 떠내려 온 작은 돌멩이를 소녀는 주워와 사랑하는 강아지의 무덤 위에 놓는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소녀의 강아지 이름은 사샤다. 해안에서 돌멩이를 주운 소녀가 사샤를 안을 때처럼 돌멩이를 가슴에 안는 모습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무한한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삶과 죽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달아가는 탄성이었다.
이 그림책에는 글자가 없다. 오직 그림만으로 긴긴 여행을 보여준다. 글이 없는 그림책은 상상하는 대로 읽혀서 좋다. 읽는 사람의 나이나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돌멩이를 따라가며 보게 되는 역사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소멸의 되풀이다. 이처럼 돌멩이가 보는 인간의 삶도 죽음과 맞물려 되풀이되는 과정일 것이다. 아프리카인, 중동인, 아시아인, 유럽인, 남태평양 섬나라 사람의 손까지 고루고루 거쳐 미국 시골마을에 있는 사샤의 무덤에 놓인 돌멩이 하나는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과 시대적 변화와 특성을 조용히 담고 있다.
한국에는 석불이 참 많다. 한국에 석불이 많은 까닭은 생산적인 면에서 비용이 적게 들고 내구성이 강해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석불을 만드는 여러 형태 중 바위 면에 새기는 것을 마애불이라 한다. 마애불은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을 가진 독특한 분야로 이동이 불가능하여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에 그 장소에 있었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스톤마운틴 같은 거대한 바위가 한국에 있었다면 전체가 거대한 불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스톤마운틴에도 거대한 조각이 있다. 남부연합군 지도자였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 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 장군을 새긴 것이다.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예제도를 찬성했던 남부연합과 관련한 기념물을 없애려는 사람에게는 흉물처럼 보일 조각이다. 하지만 바위를 주체로 생각해보면 이런 논쟁도 해안에 떠내려 온 그저 작은 돌멩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