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의 시구처럼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이번 3·1절에도 좌·우 세력간 갈등은 물과 기름처럼 여전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관계설정에서도 시각차는 확연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식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더불어만주당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와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며 반발했다.
이 같은 대립구도는 해외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해외촛불행동’이다. 이 단체는 최근 미국을 비롯한 11개국 35개 도시에서 조직을 결성하고, 올 2월부터 윤 대통령 퇴진시위를 벌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초장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26일 ‘에난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계획한 워싱턴 집회가 차질이 생긴 것이다.
건물주는 이 시국선언행사가 애초 소녀상 건립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특히 대통령 퇴진 시위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불허했다. 이 참에 소녀상 이전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 집회는 무기 연기된 상태다.
개다가 명분 없는 촛불시위에 화가 난 해외 보수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3.1절을 기해 Great Korea(대표 배정호)를 비롯한 10개국 85개 해외동포 단체들은 긴급 성명서를 발표한데 이어, 배창준 전 민주평통 휴스턴협의회 회장 주도로 미주 주요 한인신문에 촛불시위를 반박하는 광고를 일제히 게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옛 언론사 후배가 페이스북에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극일(克日)’을 주제로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그는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타도의 대상이었으나 해방 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는 극복의 대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을 대표적 극일 기업인으로 손꼽았다.
이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을 배웠다고, 이를 승화시켜 지일(知日)의 경영인으로 거듭났다.
일본을 제대로 배운 이 회장은 철저하게 용일(用日)을 실천했다. 반도체, TV, 배터리 등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본기업들을 철저히 벤치마킹하고 일본인 기술자를 자신의 호텔방으로 초빙해 기술강의를 들었다.
또한 일본 전자회사에서 퇴직한 기술자들을 삼성전자 사장단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고 고문으로 임명했다.
경영진들이 그들을 무시하고 배척하자, 일본인 고문들을 한남동 자택으로 불러 서운한 감정을 직접 어루만져 줬다.
감동한 고문들은 이회장에게 삼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조언했다. 대표적 인물이 교세라 출신의 디자이너 후쿠다 다미오 고문이다.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는 삼성의 운명을 바꿨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는 삼성 신경영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또한 극일을 위해서는 거꾸로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라는 게 이 회장의 지론이다.
실제 전자부문의 다양한 협력 사례는 부지기수다. 서비스 관련 회사들도 일본 기업과의 협력속에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생전에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며, 언론에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를 앞질렀다는 기사가 나가서는 안 된다고 홍보팀에 신신당부했다는 후문이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특정 산업이나 문화에서는 적어도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질서의식, 고령화 사회 대처 시스템, 노벨상, 기초기술 등등 ··· 여전히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게 많다.
이번 3·1절에도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거친 언사가 마구 쏟아졌다. 극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회장처럼 일본을 알고, 이용하고, 나아가 협력하는 데서 해법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