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우물 속에서만 살았으니 바다를 본적도 없고 이야기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경험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옛날에 장자가 처음 했다고 한다. 세상은 한 동네로 급속히 확대되고, 한 우물을 파서 한 직종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잘 살다가 은퇴하고 애틀랜타 새 고향에서 행복하게 사는 과정 속에 우물 안 개구리들의 소통의 문제가 보이기도 한다.
지난 연말 한국에 있는 사촌형제들이 모여 즐거운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고, 그 때 만든 동영상을 보니, 한 사촌 동생이 미국에서 교수로 은퇴하고 사는 나를 향해 곁에 계셨으면 많은 지혜의 도움을 받을 터인데, 이국에 살아서 아쉽다는 진심 어린 표현을 했다. 그 영상을 보며 내가 과대평가 받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학위란 한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으려 한 우물을 파는 연습이고, 운이 좋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다 은퇴했을 뿐 많은 지혜의 주인공은 절대 아니다.
“내가 교수가 안 되었다면 이 미국에서 뭘 해먹고 살까? 많고 넒은 분야에서 좁쌀 같은 한 분야 강의하는 것뿐인데 교수를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근무하던 대학에서 세명의 한인 교수들이 점심을 먹을 때 한 교수가 한 말에 우린 모두 동감이었다. 그 도시에 사는 한인들, 의사들, 사업하시는 분들, 회사에 다니는 분들, 그들은 모두 열심히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장한 분들이었다.
한국 가는 장거리 비행 중에 심장발작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비행기 안에 의사분이 있으면 도와 달라는 기내 방송을 듣고도 의사인 남편이 나가지 않아, 부인이 왜 당신은 의사면서 가만 있냐고 했다. 환자가 필요한 의사는 심장관계 전문의라고, 분야가 달라 도우려다 악화시킬 위험도 있고, 책임감도 따르기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의사가 되는 과정도 한 우물을 파서 그 속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점은 교수와 같다.
운석 지구 충돌, 빙하기 등 극심한 지구 환경 변화에 지상 최강 공룡들은 적응 못하고 사라졌지만, 개구리는 생존했고, 6천여종으로 다양하게 진화한 개구리는 지금도 생존한다고 한다. 호주 사막에서는 비 올 때 물을 방광속에 채워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서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최대 3년까지 기다리고, 알래스카 동토지역 개구리는 겨울에 부동액을 개발하여 신체의 65%가 냉동된 상태에서도 4주를 버티고, 병균 우글거리는 흙탕 물속에서도 생존하는 개구리의 촉촉한 피부는 병균들을 막는 특수 기능이 있어 과학자들은 개구리 피부를 연구해 기적의 화학 물질을 만드는 중이고, 웅덩이나 논에서 개구리들의 합창은 수컷들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위한 오디션을 거쳐 우수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하기에 그들은 살아 남는다고 한다.
은퇴하고 애틀랜타에 와서 사니 기후 좋고, 생활비 싸고, 한인들 먹거리 풍성하여 좋다. 무엇보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은퇴하신 장한 한인들과 더불어 새 고향을 만들어 가니 행복하다.
그런데 내가 참가하는 모임들, 교회, 등산, 골프, 탁구 등 어디에나 싸움이 벌어진다. 문득 은퇴 전에 읽고 들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맥도날드에 모인 한국 노인들의 싸움이야기, 도시에서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맥도날드에 와서 좁은 자리를 하루 종일 차지하고, 그들 간에 싸움이 자주 벌어져 경찰을 부르면 아무 일 없었다고 흩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왜 그런 말싸움이 일어날까? 개선의 방법은 없을까?
내가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이고 나와 같은 우물 안 개구리들이 많기 때문인 거 같다. 다른 의견들이 나오면 들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변하기가 어렵다. 남의 입장에 서서 그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살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 같이 보인다. 그래도 듣도록 계속 노력해 보자. 내 의견을 이해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상대와 말 싸움을 하면 오해만 사고, 친구도 잃고, 악다구니를 하면 내 건강만 해친다.
결혼생활 오래한 사람 치고 부부가 말다툼을 안 하는 사람은 없어도, 대부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과 모여 어울리다 보면 때로는 의견이 충돌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의견 충돌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현이고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다른 의견들을 이해하려 해야지, 의견을 모을 때 내 의견이 안 받아 진다고 떠난다면, 결국 내가 속할 모임은 이세상에 하나씩 없어진다는 결론이 아닐까? 다만 다른 의견들을 수용하는 과정과 방법을 배워야 될 것 같다. 존재하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숙의 단계까지 얼마나 먼 곳에 내가 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