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여자가 나이가 들면 ‘부엌에 들어가기가 범 굴{호랑이 굴)들어가는 것보다 더 무섭다’ 라는 말이 있다. 옛날의 부엌은 한데나 다름없이 춥고 더운 곳이었으며 가사 노동하기가 너무나 불편한 곳이었다. 여자들은 모든 악조건을 당연히 받아들여 그곳에서 최선의 식생활을 완성해야 했다. 다른 일도 많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은 시절에 먹을 만한 것을 해내야 하는 일이 부엌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범 굴보다 무섭다고 했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며느리가 들어오면 부엌 일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마음 놓고 부릴 수 있는 큰 일꾼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옛날이 아닌 우리 때만 해도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나 때는~”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라떼’ 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지난 시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변해 버린 세상에서 ‘낀 세대’인 우리도 할 말은 좀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시절의 며느리들은 시댁에 거의 매일 전화로 안부해야 했고 자주 방문 인사를 드려야 했다. 셋방살이를 해도 용돈은 다달이, 명절은 따로 챙겨야 했다. 시댁 대문 안에 들어서면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였다. 시어머니는 무슨 특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복종해야만 했다. 남편은 시남편이라 불리울 정도로 결혼 후 갑자기 효자가 되어 저 하나만 믿고 결혼한 아내를 힘들게 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모임에서 친구 J가 하소연을 했다. 아들, 며느리 온다면 정성껏 밥 해서 먹여 보내고 혹시라도 며느리 불편할까 봐 마음 쓰고 품으려 하는데도 결혼한 지 몇 년이 된 며느리는 늘 남같이 냉랭하다. 시집살이는 고사하고 며느리를 섬기는데도 눈치 봐야 하니 힘들다. 매운 시집살이 진저리 나서 좋은 시어머니 되려고 했더니 이제 ‘며느리살이’까지 하고 있다. 대체 우리 세대는 왜 이러는지 아마 역사도 우리 ‘낀 세대’는 밟고 지나 가려나 보다. J가 말한 내용이었다.
그러자 친구 S가 말했다. 너의 전제가 틀렸다. 시어머니가 마음을 쓰고 품는다는 것은 우리가 젊을 때 그 시절 시어머니들이 가졌던 특권을 너는 포기하고 너그럽게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시어머니의 특권’이 없다. 그 특권은 우리 시어머니 시대에서 우리를 ‘pass’한 채, 다음 세대로 넘어 간 거를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게 문제다. 역사뿐 아니라 누구도 우리 편은 없다. 편은커녕 오히려 대중에 영향력이 큰 드라마에서는 그악스러운 시어머니가 며느리 지독하게 괴롭히며 시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부추기고 있다. 오직 극적 효과와 재미를 위해 수 백 년 가해자로 각인되어 온 시어머니 캐릭터를 대중에게 재확인시키고 지금은 아무 힘도 없는 우리를 공격하며 점점 고부사이를 이간하고 있다. 시대가 시집을 멀리하고 싶은 며느리들의 열망에 부채질하고 있으니 우리는 아들, 며느리 처분만 바라고 살아야 하는 ‘을’이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무엇이 옳은지는 차치하고, 서글픈 이야기는 결국은 아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요즘 아들들은 엄마가 제 아내에게 혹시 뭐라고 할까 봐 미리 나서서 막는다는 것이다. 우리 때 남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물색없이 제 엄마 편만 들어서 아내를 힘들게 했는데 말이다. 며느리에 이어 아들까지 변한 이런 급진적 소용돌이는 ‘낀 세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무튼 우리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고부 풍속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며느리 괴롭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며느리의 어려움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금을 통해 보건대 요즘의 대세는 ‘며느리 전성시대’ 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며느리의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젊은 며느리가 시집과,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거리를 두고 의무적인 관계로 사는 것을 진정 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지나고 보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그저 변화의 몸살이 있을 뿐이다. 다만 예고도 준비도 없이, 세대를 건너 뛴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낀 세대’는 서글프다. 누가 대답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pass”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