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쯔충 “美, 오늘 역사 썼다” 키 호이콴 “이게 아메리칸 드림”
레이디가가·리한나 등 공연 ‘후끈’…톰 크루즈 불참 ‘입방아’ 오르기도
올해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은 작년과 달리 별다른 사고 없이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 3번째로 사회를 맡은 베테랑 진행자 지미 키멀의 매끄러운 진행 속에 아시아계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씽’)가 7관왕을 차지, 할리우드의 비주류 아시아인들이 크게 주목받는 무대였다.
배우들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에 더해 당대 팝계의 디바로 꼽히는 리한나와 레이디 가가 등의 열정적 공연이 더해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제95회 오스카 시상식은 지미 키멀의 사회로 진행됐다. 로이터
◇ 작년 ‘윌 스미스 폭행사건’ 같은 돌발 사고 없어
12일 저녁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작년의 ‘윌 스미스 폭행 사건’ 같은 돌발 대형사고는 없었다.
작년 시상식에서는 배우 윌 스미스가 행사 도중 무대로 올라와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냅다 후려갈기는 일이 벌어져 시상식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스미스는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크리스 록이 탈모증을 앓는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놀렸다는 이유로 화가 나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스미스는 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이후 10년간 오스카 시상식 참석이 금지됐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터라 올해 시상식이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됐으나, 이번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세 번째로 진행한 코미디언 지미 키멀은 노련한 솜씨로 시상식을 매끄럽게 진행했다.
그는 행사 도입부에 “우리는 엄격한 정책을 갖고 있다. 이 극장에 있는 누구든 시상식 중 폭력을 저지르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고 19분 동안 긴 소감을 발표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며 작년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당부했다.
참석자들 역시 작년 사건을 의식해 초반에는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키멀의 농담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점차 부드러워졌다.
이후 시상식 진행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키멀은 행사 중간에 “이 정도면 뺨 때리기가 조금 그리워지지 않느냐”면서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앞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가운데 2017년 작품상 시상자인 워런 비티, 페이 더너웨이가 작품상 수상작을 ‘라라랜드’로 호명했다가 2분 25초 만에 ‘문라이트’로 정정 발표하는 ‘봉투 배달사고’도 있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 받은 미셸 여(양쯔충). 로이터
영화 ‘고래’ 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랜던 프레이저. 로이터
◇ 아시아계 대거 수상…전 부문 현장 시상으로 진정성 보여
이번 시상식에서는 저예산영화이자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에브리씽’이 7개 부문을 휩쓸면서 그동안 할리우드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었던 영화인들이 무대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장이 됐다.
‘에브리씽’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여성이 세상을 구한다는 줄거리를 다중우주(멀티버스) 세계관으로 엮어내 호평받은 작품이다.
특히 1980∼90년대 홍콩 액션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양쯔충(양자경)이 아시아계 배우로는 처음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어 올해 시상식에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올해 환갑을 맞는 양쯔충은 수상 소감으로 “여성 여러분, 누구도 당신에게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지 않게 하세요”라며 “미국은 오늘 역사를 썼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 조너선 왕과 감독인 대니얼 콴 역시 각각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으로 무대에 올라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꿈을 잃지 않게 해준 이민 1세대 부모와 가족에게 감사를 전했다.
같은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베트남 출신 배우 키 호이 콴 역시 울먹이며 어린 시절에 겪은 난민 생활을 언급하며 “이런 스토리는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들 얘기하는데 실제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대니얼 콴과 대니얼 쉐이너트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했다. 로이터
◇ 전 부문 현장 시상, 팝 디바 공연으로 축제 열기 더해
지난해 오스카 시상식은 8개 부문 시상을 생방송으로 진행하지 않고 사전 시상해 비판을 받았으나, 올해는 모든 부문 시상을 현장에서 직접 하는 방식으로 복원됐다.
그에 따라 시상식이 3시간 넘게 이어지며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편집, 분장, 음악, 미술, 음향 등 영화 제작의 각 부문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으로 본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노력이 행사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더해 올해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레이디 가가(‘탑건: 매버릭’)와 리한나(‘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등 팝계 톱스타들의 공연도 현장의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했다.
가가는 얼굴의 화장을 다 지우고 검은색 티셔츠와 진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모두가 자신만의 영웅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말한 뒤 ‘탑건: 매버릭’의 주제곡 ‘홀드 마이 핸드’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불러 기립박수를 받았다.
임신 중에 만삭의 몸으로 시상식 무대에 오른 리한나 역시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영화 탑건의 주제가를 부른 레이디 가가의 무대. 로이터
영화 블랙팬서의 주제가를 부르고 있는 리하나. 로이터
한편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 톰 크루즈(‘탑건: 매버릭’)와 제임스 캐머런 감독(‘아바타: 물의 길’)은 사회자 키멀의 입방아에 올랐다.
키멀은 “우리에게 극장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두 사람이 지금은 극장에 없다”고 비꼬았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배우 등 참석자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 플래시 세례를 받는 장소인 레드카펫이 전통을 탈피하고 샴페인색 카펫으로 바뀌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상식 카펫 색깔을 다양하게 꾸미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주최 측이 62년 만에 변화를 준 것이었다.
이날 시상식 카펫에는 중국 배우 판빙빙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