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커튼 사이로 발그스레한 햇살이 스며들었다. 동이 틀 무렵 서서히 퍼져 올라오는 주홍빛 햇살들이 온 동네를 따스하게 물들일 즈음 우리 집 창가는 빛잔치로 화사해진다. 얼른 창가로 다가가 아침 햇살을 즐기려 커튼을 올렸다. 눈앞에 진분홍 철쭉이 벌써 싹을 틔우고 활짝 웃고 있다. 어제만해도 이렇게 봄 맛이 들진 않았는데 밤사이 선명하게 짙어진 꽃분홍이 가슴에 살랑이는 봄바람을 보내왔다. 벌써 3월이다.
나에게는 한해의 시작이 3월이다. 1,2 월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처럼 의미 없이 질척대다 사라져 버리고 새싹의 움틈이 눈에 보이는 3월에 들어서면 그때서야 한해가 시작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연말과 연초를 무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내어 떼어 낼수도 없고, 하루 아침에 지난해를 사진첩에 넣어 버릴 수도 없어서 어영부영 하다보면 어느새 3월이 창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마음이 바빠진다 그렇게 더디 가던 1,2월과는 다르게 3월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문을 활짝 열고 봄바람을 맞이했다. 겨울내내 쌓여 있던 망설임과 옹졸함을 날려보내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겨울에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 하는 등 다른 계절보다 더 일이 많아서인지 마음이 조급해지고 시야도 좁아지는 것 같다. 산책길에 나서도 옷깃을 여며야 했고 나무들은 앙상해져 여유가 없었고 누렇게 빛바랜 잔디와 황토빛 목마름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색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온갖 색들이 올라오며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다. 나무색 뿐만 아니라 흙색에서도 봄이 묻어 나왔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새로 단장한 봄꽃밭의 소담스런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쪼그라 들었던 어깨가 활짝 펴지며 미소가 절로 스며 나왔다. 어떤 잘못도 용서해 주고 싶은 여유마져 생겨난다. 이것은 3월에만 베풀 수 있는 아량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땅에서 연초록으로 배실배실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과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인다. 봄처녀들이 나물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다던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나는 산과 들로 나가는 대신 쇼핑 센터로 향했다. 나무색 식탁에 개성없는 하얀색 그릇들을 놓으면서 언젠가는 다른 색으로 바꿔야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한가한 몽고메리의 거리에는 물오른 나무잎들이 생기를 머금고 찰랑이고 있었다. 아직 이른 봄이건만 남부의 화사한 햇살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는 초록의 물결에 연달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토록 빛나는 초록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다. 설레임과 함께 그리움이 묻어 나오고 그 속에 꿈틀대는 봄날의 욕망도 고개를 디밀었다.
겸손하고 단아하게 나이값을 하면서 살아야지 하던 평범한 삶에 화사한 틈이 생겨났다. 무채색 일상속으로 예쁜 색들이 내딛는 발걸음과 함께 묻어 들어 왔다.
꽃들이 새겨진 컵과 연분홍 접시, 연노랑 테이블보와 보라색 냅킨등 봄들을 가득 안고 집안으로 들어 왔다. 봄처녀만 봄인가. 중년도 노년도 봄이다. 봄이 어디 나이를 빗겨 가던가. 이런 봄날, 오늘 하루쯤 이렇게 호사를 누려야 한해를 살아갈 힘이 생기는게 아닌가 하며 열심히 그릇들을 씻고 단장을 했다.
봄식탁을 차려야 겠다. 봄꽃과 같이 축배를 들어야 겠다. 지나갔다 생각했던 청춘을 소환하고 잃어 벼렸던 젊음도 불러내어 오늘은 화사한 3월의 식탁을 차려야겠다.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위해,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위해 축배의 잔을 채워야 겠다. 앞마당 뒷마당 봄들이 식탁위에 어우러지고 봄 맛은 선물인듯 달콤하기만 하다.
봄빛의 싱그러움은 잠자는 거리를 깨우고 그 거리위에 선 나를 부른다. 가져갔던 젊음과 청춘을 앞마당 연초록속에 툭 던지며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소리없이 야속하게 가버렸던 지난 날을 잊어 달라며 반짝반짝 웃고 있다.
바람들이 속삭인다. 3월이잖아. 다시 시작이야, 행복해야 해, 오래 있지 못해 미안해, 하며 귓가를 간지럽힌다. 생각지 못한 뜻밖의 선물에 화사한 외출을 한다. 한정된 시간속에 깃들인 봄노래가 더욱 찬란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