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축제 도시 메이컨 명소
조지아의 드문 국립역사공원
도심 뮤지엄·옛 건물도 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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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컨(Macon)은 한인들에겐 가깝고도 먼 도시다. 애틀랜타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지만 와락 눈길 끌 만한 명소나 명물이 없다 보니 일부러 갈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년 3월 열리는 벚꽃 축제가 메이컨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인들에겐 2016년 금호타이어 공장이 들어서면서 좀 더 친숙해졌다.
메이컨은 I-75와 I-16 고속도로가 만나는 곳에 있다. 조지아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가장 한 가운데다. 그래서 메이컨의 별명도 조지아의 심장(The Heart of Georgia)이다. 실제로 동쪽의 어거스타, 남서쪽 콜럼버스, 남동쪽 사바나와 함께 메이컨은 조지아 중부를 대표하는 거점 도시로 꼽힌다.
인구는 메이컨이 속한 빕(Bibb) 카운티까지 합하면 15만 명이 넘는다. 한인 교회도 몇 곳 있고 한국 식당도 있다. 한인 인구는 많지 않다. 2020년 센서스에는 493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조사 때는 284명이었다. 이는 방문자나 임시 거주자, 미 응답자를 제외한 숫자일 터이니 실제 한인 수는 이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 정상. 멀리 메이컨 다운타운이 보인다.
올해 2023년 메이컨 벚꽃 축제는 3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1982년부터 시작된 벚꽃 축제는 조지아의 대표적인 지역 이벤트로 제법 명성이 높다. 메이컨 관광 안내 웹사이트에는 35만 그루가 넘는 요시노 벚나무(Yoshino Cherry Trees)가 도시 전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일 거라고 자랑하고 있다. 요시노 벚나무는 한국에서는 왕벚나무로 불리는데, 눈부신 벚꽃을 피우는 진해와 여의도의 벚나무도 대부분 이것이다.
지난 주말 직접 가 보니 메이컨 시 곳곳에 축제 현수막이 내 걸리는 등 도시 전체가 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하지만 벚꽃은 이미 피어 축제 기간에는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과거 메이컨 벚꽃 축제에 다녀왔다는 한인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크게 볼 게 없더라’는 평이 많았다. 한국의 진해 군항제나 여의도의 눈부신 벚꽃 축제를 기대하고 가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 남동부에 이만한 벚나무 군락이 없고, 축제 또한 조지아주의 대표적 이벤트로 꼽히는 만큼 나들이로 삼아 한 번쯤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캐롤린 클레이턴 공원에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나무엔 일본 연등이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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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축제가 아니어도 메이컨을 가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으로 오크멀기 마운드 국립역사공원(Ocmulgee Mounds National Historical Park)을 꼽을 수 있겠다. 공원은 메이컨을 가로질러 흐르는 오크멀기 강 건너에 있는데 다운타운에선 차로 5분 정도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오크멀기라는 말은 ‘물이 끓는 곳’이란 뜻의 인디언 원주민 부족 단어다. 오크멀기 강은 길이가 255마일(410km)에 이르고, 중간에 오코니(Oconee) 강과 만난 뒤, 거기서부터는 알타마하(Altamaha) 강으로 이름을 바꿔 사바나 남쪽 대서양까지 흘러간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증기선이 다니면서 조지아 중부와 사바나를 연결했던 중요한 교역 통로였다.
오크멀기 마운드는 오랫동안 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유적지다. 마운드(Mound)란 봉긋 솟은 흙더미를 말한다. 가서 보면 제주도에 있는 작은 분화구 ‘오름’ 같기도 하고, 경주에 있는 옛날 고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확인된 마운드는 크고 작은 것 합쳐 모두 8개다.
오크멀기 마운드 공원에서 가장 큰 흙더미인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가 보인다.
마운드의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부족 지도자의 통치나 제의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일부 마운드는 매장지로 활용됐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일대는 19세기 초 메이컨-사바나를 연결하는 철도가 통과하면서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방치됐다가 1934년에야 연방 차원의 보호 대상지역이 됐다. 1966년엔 국립 사적지로, 2019년에 다시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됐다. 조지아에서 국립역사공원은 여기 말고도 애틀랜타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역사공원(Martin Luther King, Jr. National Historical Park)이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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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멀기 마운드 국립역사공원 입구.
공원에 들어서면 독특한 외관의 방문자센터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부에는 안내 센터 외에도 꽤 큰 규모의 전시실과 기념품 가게가 있어 꼭 둘러보는 것이 좋다. 전시실엔 1만 7000년 전부터 시작해 유럽인 도착 전후 미시시피 인디언 후예의 모습까지 이 지역 원주민 부족의 생활과 유물 등을 꼼꼼히 재현해 놓았다.
독특한 외관의 방문자센터. 17000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 생활상을 모두 재현해 놓은 전시실이 있다.
방문자 센터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마운드는 1000년을 땅속에 있다가 뒤늦게 발굴, 복원된 어스로지(Earth Lodge)다. 내부는 중요한 회의장으로 사용된 넓원 공간이 복원돼 있는데 좁은 땅굴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방문자센터 인근에 있는 어스로지 마운드 입구. 신라 고분처럼 생겼다.
마운드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
어스로지 마운드 내부. 부족 회의나 제사 등을 지내는 장소로 사용됐다.
어스로지 뒤를 돌아 철길을 넘어 10여분 더 걸어 걸어가면 8개 마운드 중 가장 큰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Great Temple Mound)가 나온다. 마운드 위로 올라가는 데크와 목재 계단이 설치돼 있어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약 17m 높이의 마운드 꼭대기는 꽤 넓은 평지인데 좌우 사방이 다 내려보인다. 멀리 광활한 숲과 강물, 메이컨 도심 건물을 배경을 사진을 남기기도 좋다.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레이트 템플 마운드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본격적인 하이킹 트레일이 시작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공원 내 트레일은 모두 8마일에 이른다. 트레일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 있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어 숲과 강, 늪지를 감상하며 한두 시간 조용히 걷기에 좋다.
우거진 숲을 따라 뻗어 있는 리버트레일. 포장이 잘 되어 있어 달리기에도 좋고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우선 오른쪽 리버트레일은 월넛 크릭과 오크멀기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이다. 왕복 2마일, 40~50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리버트레일은 월넛 크릭이 오크멀기 강으로 합류되는 지점까지 약 1마일 구간이다.
돌아올 때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습지를 가로질러 나 있는 오펠로파(Opelofa) 트레일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오펠로파는 ‘늪’을 뜻하는 원주민 말이다. 이곳 습지는 오크멀기 강의 지류인 월넛크릭 물이 넘쳐 만들어진 곳으로 백로, 물수리, 비버 같은 상위 포식자 외에 온갖 물고기, 거북, 뱀, 개구리 등이 서식한다고 한다.
오펠로파 트레일 습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방문자센터로 돌아오는 마지막 코스는 0.7마일 길이의 바트램(Bartram) 트레일이다. 바트램은(William Bartram, 1739~1823)은 18세기 말 이 지역을 여행하고 오크멀기 평원에 관한 기록을 처음 남긴 사람이다. 트레일은 철길 아래 아담한 굴다리를 지나 숲길로 이어진다. 19세기 후반 만들어진 굴다리는 이 지역 진흙으로 구운 벽돌로 조성됐는데 이는 철제나 목제 굴다리가 보편적이던 당시 건축물과는 달라 1979년 연방 사적지로 등재됐다.
메이컨-사바나 간 철도가 건설되면서 오크멀기 마운드 유적지는 훼손되고 둘로 나뉘어 졌다. 공원 내를 지나가는 철도 아래 굴다리는 사적지로 지정됐다.
걷다 보면 악어나 뱀, 멧돼지가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간혹 보이지만 나는 두 시간 가까이 이곳을 배회하면서도 다람쥐나 새 외엔 어떤 동물도 만나지는 못했다.
리버트레일과 오펠로파 트레일 분기점. 악어 조심 경고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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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메이컨에서가 볼 만한 곳은 다음과 같다.
▶ 터브먼 뮤지엄(Tubman Museum / 310 Cherry St. Macon)
터브먼 뮤지엄. 미국 남동부에선 최대 규모의 흑인 문화 예술 박물관이다.
남동부 지역의 흑인 박물관으로 가장 큰 규모다. 미국 흑인들이 이룬 업적을 기린 벽화와 다양한 상설 전시물, 주제별 전시도 하고 있다. 해리엇 터브먼(1822-1913)은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조직을 통해 남부 노예 탈출을 도왔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다.
터브먼 뮤지엄 옆에 있는 옛날 역 건물. 지금은 연회장으로 쓰인다. 바로 옆에 그레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 때 앤드루 잭슨을 대체할 미국 20달러 지폐 새 모델이 될 뻔했다가 트럼프 대통령 때 무산됐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뮤지엄 입장료 10달러. 55세 이상은 1달러 할인.
▶성 요셉 성당(St. Joseph Catholic Church/ 830 Poplar St. Macon)
존 요셉 성당. 1889년부터 14년간의 공사를 거쳐 1903년 완공됐다. 메이컨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다.
1903년에 완공된 고딕양식의 대리석 성당이다. 높이가 200피트(61m)에 이르는 메이컨 최고 높이의 쌍둥이 건물로 남부의 보석으로 불린다. 연방사적지다.
▶기타
터브먼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조지아 스포츠 명예의 전당(Georgia Sports Hall of Fame), 7층 규모의 연방 사적지이자 전형적인 르네상스 부흥 양식 건축물인 헤이 하우스(Hay House/934 Georgia Ave. Macon), 남북전쟁 때 대포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는 메이컨 유일의 저택 캐넌볼 하우스(Cannonball House / 856 Mulberry St. Macon)도 메이컨 시가 추천하는 관광 명소다. 메이컨에서 남쪽으로 18마일 더 내려간 곳에 있는 항공박물관(Museum of Aviation / 1942 Heritage Blvd. Robins AFB, GA 31908)도 들러볼 만하다.
메이컨 시청. 벚꽃 축제를 앞두고 분홍빛 벚꽃 장식을 내걸었다.
# 메모 : 둘루스에서오크멀기 마운드 국립역사공원까지는 100마일 조금 넘고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공원은 매일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공원은 오후 5시엔 문을 닫으니 그 전에 나와야 한다. 입장료는 없다. 주소 : 1207 Emery Hwy. Macon GA 31217
오크멀기 국립역사공원 트레일 지도.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