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022년 국가별 인권보고서’의 한국 관련 내용에서 MBC의 비속어 보도 논란을 기술하면서 그 앞에 소제목으로 붙였던 ‘폭력과 괴롭힘’ 표현을 부적합했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삭제했다.
미국 정부는 또 미국과 함께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이 강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전 세계 인권 보호를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폭력과 괴롭힘’ 소제목이 삭제된 국무부 한국 인권 보고서(위, 국무부 홈페이지 보고서 캡처)와 ‘폭력과 괴롭힘’ 소제목이 들어간 최초 보고서(아래, MBC 뉴스 보도 화면 캡처)
국무부는 21일 연례 인권보고서의 한국 편에 있던 ‘폭력과 괴롭힘(Violence and Harassment)’이라는 소제목을 삭제했다. 현재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고서에는 이 표현이 없다.
앞서 국무부는 전날 공개한 인권보고서에서는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윤 대통령이 외국 입법기관을 비판하는 영상을 MBC가 공개한 뒤, 윤 대통령이 동맹을 훼손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내용이 거론된 문단의 소제목을 ‘폭력과 괴롭힘’으로 표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서는 미국 국무부가 MBC 비속어 논란을 ‘폭력과 괴롭힘’의 사례로 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인권 보고서는 윤대통령의 비속어 사건 보도를 국익 훼손 행위로 비판한 대통령실의 대응을 ‘폭력과 괴롭힘’ 으로 표시했다가 삭제했다. MBC 보도 영상 캡처.
국무부는 해당 소제목을 삭제한 이유를 묻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변인 명의의 이메일을 통해 “해당 소제목(sub-header)은 인권 보고서상의 표준 용어이며 그 소제목이 사건의 기술에 적합하지 않았다(not well suited)”면서 “그것은 명확성을 위해서 제거됐다”고 설명했다.
국무부가 이같이 신속하게 인권 보고서상의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평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한국의 정권 교체 이후 처음 나온 이번 인권보고서상의 여러 표현을 두고 벌어진 한국 내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 등과 이달 29~30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인권보고서상에서 거론된 이른바 비속어 논란이 한미동맹 관계와 연관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도 미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배경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바이든 대통령이 뉴욕에서 주최한 다자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한 발언을 두고 비속어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바이든 대통령이나 미국 의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했으며 미국 NSC 측에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 바 있다.
美 인권보고서 “한국, 명예훼손죄 적용해 표현·언론 자유 제한”
‘비속어 논란’ MBC 사례·유시민 벌금형·유튜브매체 압수수색 언급
부패문제도 지적…기업인 사면·대장동사건·곽상도아들 50억원 거론
국무부는 20일 한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 명예훼손죄 적용으로 인해 초래되는 언론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 제한 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국무부는 이날 공개한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 한국 편에서 “한국은 대통령과 의회에 의해 통치되는 헌법적 민주 국가”라며 “대선과 총선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요 인권 문제로는 명예훼손죄 적용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 제한, 정부 부패, 젠더 폭력 조사 부재, 군내 동성애 처벌 문제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 “(한국은) 법적으로 언론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부는 이를 일반적으로 존중한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다른 법 조항을 적용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한정하고 인터넷 접근을 제한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논란’과 관련, “윤 대통령이 외국 입법기관을 비판하는 영상을 MBC가 공개한 뒤, 윤 대통령이 동맹을 훼손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면서 이를 ‘폭력과 괴롭힘(Violence and Harassment)’ 사례로 거론했다.
인권보고서가 언급한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시 ‘비속어 논란’ 관련 MBC 보도 화면. MBC 영상 캡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MBC를 고소했고, 방송기자협회에서는 대통령실에서 영상 공개 전 압력이 제기됐다는 성명을 냈다고도 소개했다.
이어 “11월 10일 대통령실은 성명을 내고 ‘반복되는 왜곡 보도’를 이유로 MBC의 대통령 순방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며 8개 언론이 공동 성명을 통해 이 같은 결정을 ‘언론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규탄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 정부는 공공의 토론을 제한하고 개인과 언론의 표현을 검열하는 데에 명예훼손법을 사용했다”며 “비정부 기구와 인권 변호사들은 정치인과 공무원 유명 인사들이 해당법을 이용해 성희롱 공개를 막는 것을 비롯해 보복의 도구로 이를 이용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6월 서울서부지법에서 한동훈 법무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과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쥴리 의혹’ 등을 보도한 유튜브 매체 열린공감TV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대표 사례로 지목됐다.
법무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관련해선 “정부는 일반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일부 제한을 부과한다”며 “지난해 5월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 이내 100m 집회 및 시위 금지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들이 관저와 집무실이 분리돼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반발한 결과 서울행정법원이 조건부 허용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고 기술했다.
부패 부문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사면한 사실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고, 신 회장 또한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뇌물 의혹과 연관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당시 논란이 됐던 대장동 사건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 보고서에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11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의 선거 자금 6억원을 받은 혐의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기소한 것을 부패 사례로 거론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이 화천대유로부터 아들 퇴직금 혐의로 50억원을 받은 것과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1월 불구속 기소된 것도 동일한 항목에 포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