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에서 돌아오는 길에 10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Battleship Parkway로 오렌지 비치로 향했다.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이라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70년 만의 홍수로 모빌 베이의 수위가 위험하게 높았다. 황토물로 출렁이며 도로를 넘실거리는 바닷물에 차도 근처가 물바다여서 약간 두려웠지만 통행차단이 되어 있지 않아서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도로변의 키 큰 갈대들이 신나게 춤추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불쑥 갈대들이 지나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듯해서 은연중에 나도 손을 흔들어줬다.
나에게는 산 보다 바다다. 산보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 오래 산 영향도 있지만 내 속에서 늘 파도로 철썩이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시 ‘귀’ 탓이 더 크다.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 그리워라.” 그러니 바닷가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주위로 산만하게 흩어지는 시선을 모아서 바다만 봤다. 멀리 선명하게 그어진 수평선이 의식하고 있는 것과 무의식으로 지니고 있는 내 모든 상념을 한꺼번에 삼켰고 그 수평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은빛 물결로 끊임없이 다가왔다.
밀려온 파도는 먼 곳에서 실어온 사연으로 모래밭에 흔적을 남겼다. 따스함이 하얀 모래사장에 촉촉하게 섞였다 다시 바다로 떠나고 부드러운 교향곡을 연주하는 파도소리는 허공에 울렸다. 한적한 해변을 어슬렁거리다 모래알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올리니 그것이 서서히 작은 돌멩이로 그리고 큰 바위로 불어나다가 다시 모래알이 되었다.
작은 모래알이 바다를 불러오고 순간의 시간도 영원으로 이어지는 그 우주에 모래알 같은 나의 존재는 저절로 겸허해졌다.
앨라배마 해안도시 오렌지 비치는 낯익은 곳이다. 오랜 세월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휴양지여서 모든 거리가 낯익고 도로변의 가게들이나 식당까지 추억이 많다. 왠만한 식당을 거의 다 다녀 본 후 우리가 선호하는 전문식당 몇을 찾아 놓았다. 그래서 바닷가로 가면 바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Royal Red Shrimps’을 완벽하게 쪄서 옥수수와 감자와 함께 주는 해산물 식당을 찾아갔다. 걸프만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새우의 달콤한 맛은 바닷가재 맛을 가졌다. 한갖 새우라도 새우의 왕이라 지칭되니 품위 있게 맛과 멋을 갖췄다.
우리를 서빙한 헝가리 여인이 수십년 그 집 음식을 즐기는 남편에게 메뉴를 소개하는 것이 재밌어서 처음 온 손님인양 얌전히 있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스테이크 전문식당 ‘Nolan’이 문을 닫으며 딴 장소로 옮겨서 다시 개업한다고 했는데 코비드로 그것은 물거품이 되었다. 고급스런 분위기에 어울리며 오감을 즐기게 해주는 음식이 그립다. 특히 이번에는 수 십년 제자리를 지키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Ole Francos’가 영원히 사라져서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늘 그 곳에 있어서 불쑥 들러도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이제는 그런 예상을 못하게 됐다. 사치한 꿈에서 깨어나 천천히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다니며 익숙한 곳들을 가슴에 담았다. 봄의 화사함에 눈이 부시지만 변화에 익숙하기가 힘이 든다.
바닷가 가까운 건물들이 그림자로 흩어지고 굴이 먹고 싶은 남편과 다시 해산물 식당으로 갔다. 창밖 멀리로 펠리컨 한 마리가 미동을 하지 않고 비석처럼 기둥위에 멈춰있는 것이 눈에 따가웠다. 예전에는 가볍게 보던 것조차 이제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
평화스럽게 유유자적 하던 펠리컨이나 갈매기들이 사실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살이와 분리해서 떼어놓는다.
여름 손님을 기다리는 포구에 정박된 작은 배들은 산뜻한 정물화다. 깊은 바다로 나가서 고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재미를 잘 알고 있다. 가게들이 봄방학 손님을 맞을 준비로 조금씩 부산스럽다.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여전히 반짝하는 바닷가 주변을 서성이며 지난 3년 코비드 팬데믹으로 변한 오렌지 비치의 상황을 이야기하던 남편이 불쑥 “I miss good old days.” 했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마치 우리가 모래성을 쌓은 듯 하나씩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환경은 바다와 전혀 다른 느낌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