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 기운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꿈틀거리고 있다. 겨우내 죽어서 마른 것처럼 누런 잔디밭은 3월의 봄기운이 돌면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겨울을 난 잡풀 씨와 잠자던 뿌리들이 서둘러 먼저 고개를 내밀며 반갑지 않은 인사를 한다. 그 틈사이로 작은 토끼풀 무리도 하얀 꽃을 피웠다. 잔디보다 앞서 나와서 봄의 축제를 준비하는 풀들을 보는 나의 눈길은 곱지가 않다. 며칠 사이에 콩나물처럼 자란 풀들이 잔디밭 곳곳에 전투태세로 돌변해 있다.
며칠 비가 왔으니 풀 뽑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눈에 띄게 번져 있는 토끼풀부터 뽑기 위해 손을 뻗으니 잎들이 예쁘게 살랑거리며 웃고 있다. 풀 뽑기를 잠시 잊고 꽃을 따서 팔찌를 만들고 반지를 만들었다.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잎을 뒤적이다 보니 초등학교 수학여행 갔을 때 일이 문득 생각났다. 검정 벨벳천 위에 말린 네 잎 클로버와 그 꽃을 장식해서 만든 작은 액자, 행운을 가져와준다는 말에 엄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샀던 기억이 났다. 오랫동안 엄마 화장대위에 올려져 있던 그 액자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그리움 되어 올라왔다.
잠시 엉뚱하게 나가던 마음을 다잡고 제 자리로 돌아와 토끼풀을 사정없이 뽑기 시작했다. 어! 하나씩 뽑히는 게 아니라 실타래처럼 줄줄 딸려 나오네. 토끼풀이 줄기에서도 뿌리가 나와 옆으로 번지는 덩굴식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적응력이 강하고 번식을 잘 한다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영역이 넓어진 걸 보면서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식물이겠구나 싶었다.
당장 눈에 거슬리는 풀들만 뽑아도 쓰레기 봉투가 가득했다. 그만 끝내려고 돌아서는데 나를 하염없이 쏘아보고 있는 텃밭과 마주쳤다. 말라서 토마토인지 고추인지 알 수도 없는 해 넘긴 작물들이 흉물스럽게 서서 언제까지 외면할 거냐고 물어왔다. 체념하듯 나는 다시 마른 것들을 뽑아내고 호미질을 했다. 물기가 아직 남아있는 흙과 마른 흙들이 섞이며 솔솔 올라오는 흙내음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줬다. 엄마야! 호미가 날아 갔다. 굵은 지렁이는 꿈틀대며 호미질에 놀라고, 나는 그 지렁이에 놀라 도망을 갔다. 작은 벌레들과 씨름하며 정리하고 나니 봄맞이 준비를 조금 끝낸 것 같은 후련함에 어깨가 올라갔다.
나는 꿈에 그리던 텃밭을 작년부터 시작했다. 뒷마당 한쪽 귀퉁이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서 몇 개 안되지만 오이도 심고 고추, 깻잎, 가지도 심었었다. 큰 플라스틱 박스 몇 개를 붙여서 흙을 채운 뒤 토마토와 딸기, 쪽파도 심었다. 남들이 보면 손바닥 만한 걸 갖고 그러느냐고 우습다 했겠지만 나에게는 뿌듯하고 멋진 밭이었다. 작정하고 시작은 했지만 채소를 키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풀도 뽑아줘야 하고, 물도 매일 빠짐없이 줘야 하고, 필요 없는 가지도 잘라줘야 하는데 첫 시도는 낙제 점수였다
서투른 나의 몸짓에도 시간이 지나니 열매가 달렸다. 어설프게 매달린 토마토와 블루베리, 오이들은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고 감사와 행복도 느끼게 해줬다. 상치와 고추를 상위에 올린 날은 귀한 밥상을 차린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손이 덜 간 깻잎들이 어느 사이에 풍성한 잎을 달고 손짓을 할 때는 미안하고 사랑스러웠다. 자연이 주는 태양과 흙과 많은 양분들이 작은 씨앗을 키워낸 신비로움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왕초보의 어설픈 노력에 비해 풍족한 수확이었다. 마음과 눈길로 주는 사랑은 부족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상자 속 텃밭에는 며칠 전에 심은 상치와 부추, 쪽파가 연초록으로 웃고 있다. 3월이 오면 마음과 눈빛으로만 벌이던 전쟁을 이제는 몸으로 조금 더 부딪치며 노동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 노후를 준비하는 내 목록 중에 하나를 실천하며 배워가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몇 년 뒤에는 맨발로 흙을 밟고 가꾸며 사랑을 나누는 내 모습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