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은 나름대로 애환을 가지고 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힘든 소명이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들도 연예인들처럼 무대생활을 위해 물밑에서는 온 힘을 다해 물갈퀴를 젓는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수면 아래 모습을 어렴풋하게 볼 기회가 있었다.
이낙연 전총리가 지난해 애틀랜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민주평통 애틀랜타협의회의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서다.
당시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강연 후 쇄도하는 참석자들의 인증샷 요청에 이 전총리는 식사를 채 마치지도 못한 채 자리를 파해야 했다.
공식 직함을 내려놓은 야인의 입장도 이러할 진데 공인시절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김재원 국민의힘당 최고위원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북미주자유수호연합과 Great Korea미주본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초청강연회에서 ‘한국의 정치현황과 한미동맹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연단에 섰다.
김 최고위원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여당의 실세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런 그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해외에 살면서 그리 흔치 않다.
김 최고위원의 이번 방문은 정치인의 무대뒤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강연회와 인터뷰 등을 통해 상당한 시간을 그와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강연 내용은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는 분명 아니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을 가지고 설명한 최근 한국정치 상황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선동이 아닌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현상을 설명하는 여당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압박을 통한 억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찌 보면 이 전총리가 역설했던 ‘대북 정책 일관성 유지 필요성’에 대한 대응논리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 외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해외동포의 최고 관심사인 이중국적문제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정치인의 자세다.
당초 2시간 여로 계획된 강연회는 참석자들의 질문공세로 무려 4시간이나 계속됐다. 그는 단상에서 내려와 눈높이를 맞추며 모든 질문에 성의 있게 하나하나 대답했다.
이 때문에 저녁식사도 거른 것은 물론이다. 숙소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후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강연을 통해 보수진영의 결집을 호소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대부분 참석자들은 강연내용에 집중했으나, 일부는 말초적인 애드리브(ad lib)에 방점을 찍었다.
확증편향적 편견이 미디어를 거쳐 강화하고, 팬들의 고정관념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이로 인해 연기자가 다소 곤란한 상황에 처한 듯하다. 그래도 못 넘을 산은 아니다.
뒤집기는 씨름에서 백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이 기술을 펼치기 위해 냉정한 형세판단과 강한 전투력, 그리고 꼼꼼한 수읽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난관을 타개한 후 아픈 만큼 성숙해질 것이다. 성경에도 ‘단련한 후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구절도 있다.
한편으론 이번 해프닝을 통해 그만큼 관심을 많이 받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정치인들은 본인의 부고기사 말고는 다 좋다는 우스개 말도 있다.
게다가 연극이나 영화 가운데는 개봉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훗날 관심을 끌거나 재조명된 작품이 수없이 많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새는 법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지구는 돈다.
공사다망한 가운데 이역만리까지 날아와 미주한인들을 위해 눈높이 정치를 보여준 김 최고위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