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3)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부터 개나리와 수선화, 귀여운 병아리 떼는 겨우내 얼었던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노란색이다. 봄이면 몽고메리 연못가에서 아기오리를 만날 수 있다. 보송보송한 털을 날리며 종종 걷는 아기오리 떼의 탄생과 성장을 가까이서 보는 행운이 미국 시골만의 특권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뉴욕 도심에 사는 오리를 그린 오래된 그림책이 있다.
‘Make Way for Ducklings’ 이 책은 보스턴을 대표하는 그림책으로 1941년 출간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림책 작가 로버트 맥클로스키는 오리 그림을 위해 조류학자와 협의하여 여섯 마리 새끼오리를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데려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색깔 없이 목탄만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아기 오리들의 놀람, 호기심, 지루함 같은 감정표현과 각각의 귀여운 개성까지 정확하고 다정하게 묘사한 작가의 노력이 보인다.
청둥오리 말라드 부부는 새끼들을 키울 보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지친 부부는 보스턴에 도착하여 공원에 있는 작은 섬에서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부부는 오리 배를 타는 사람들이 던져준 땅콩으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이 연못에서 아기들을 키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쌩쌩 달리는 자전거에 치일 뻔한 부부는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날아다닌다.
마침내 찰스강 옆에서 마땅한 섬을 찾은 부부는 그곳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낳을 준비를 한다. 털갈이를 하는 동안 날지 못하는 부부는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 공원으로 오고, 그곳에서 매일 땅콩을 나눠주는 마이클 경찰관을 만난다.
얼마 뒤 말라드 부인은 여덟 개의 알을 낳아 품었고, 태어난 아기 오리들의 이름은 잭, 캑, 랙, 맥, 넥, 왝, 팩, 퀵 알파벳 순서다. 아빠오리는 아기오리들을 키울 새로운 곳을 찾아보려 하고 부부는 일주일 뒤에 시민공원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동안 엄마오리는 아기오리들에게 수영, 다이빙, 행진하는 법과 자전거 같은 위험물을 피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느 아침 엄마오리와 여덟 마리 아기오리들은 아빠가 있는 시민공원을 향해 떠나고 많은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마이클 경찰관과 여러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건넌다. 시민공원 안, 작은 섬에서 말라드 가족은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행복하게 지낸다. 여유롭게 헤엄치며 사람들이 주는 땅콩을 배불리 먹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맘껏 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안전과 먹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새장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인가 의심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러다 이 이야기를 쓴 배경을 알았다. 1940년 대공황 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미국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줄 목적으로 쓴 이야기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아빠를 대신해 가족을 홀로 지켜내야 했던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더 나은 집을 찾아 떠난 아빠오리 대신 아기오리들을 낳아 가르치고 지키며 새로운 곳으로 이끄는 엄마오리가 진짜 주인공이다. 그래서 1940년대 남성지배적 시대상황과 다르게 엄마오리 말라드 부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독립심과 강인함을 지녔다.
아기오리들은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잘 보살피고 키우면 언젠가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존재들이다. 지금 고난을 견디는 이유인 새끼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배불리 먹이기 위해 부모는 안간힘을 쓴다. ‘난리가 나면 어른은 배곯아 죽고 아이들은 배 터져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전쟁이 나면 양식이 귀해지고 양식이 귀해지면 어른들은 행여 자식이 배곯을까 자기 배를 줄이면서까지 아이에게 더 먹인다는 말이다.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요즘 이 말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이를 갖고 키워봐야 한다.
비혼과 비출산이라는 말이 유행한지 오래다. 제각각 개인적 가치관이나 불가피한 이유가 있음을 이해한다. 이 이해가 기계 대리모, 인공자궁, 아기 농장이라는 말도 유행시킬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