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학부모로서 최근 자녀들이 보고 있는 책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청소년기 자녀들이 주로 잃는 책은 수퍼영웅이 활약하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 등이다. 필자도 젊었을 때 어렸을 때 봤던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C 클락의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은 경험이 새롭다.
그러나 그때 아쉬웠던 점은 대다수 공상과학소설이 남성 작가가 미국, 유럽 등 서양 위주라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를 배경이나 주제로 담은 공상과학소설은 지금도 매우 드물며, 간혹 등장하더라도 ‘감춰진 비밀’ 또는 ‘고대의 수수께끼’ 등 미래 보다는 과거지향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블랙 팬서’ (Black Panther)시리즈는 비백인들을 위한 공상과학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해볼만하다. 2018년 처음 공개된 블랙 팬서는 사상 최초의 흑인 수퍼 영웅 주인공 영화였으며, 아프리카에 위치한 주인공의 나라가 사실은 서구 백인 문명보다도 더욱 발달한 과학기술을 갖췄다고 묘사해 흑인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흑인 수퍼영웅 공상과학영화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나 앨리스 워커(Alice Walker) 등 흑인 소설가들은 1980년대부터 이른바 흑인 미래 예측 소설(black speculative fiction)을 써왔다. 이런 소설 작품들이 몇십년 후 블랙팬서 등 흑인 공상과학영화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흑인 서적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이시스 아사레(Isis Asare)의 지적이다. 그는 흑인 위주의 미래를 그린 아프로 퓨처리즘(Afrofuturism)을 다룬 흑인 문학, 음악,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흑인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시안 작가들도 백인 위주의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계 작가 반다나 싱(Vandana Singh)이 쓴 소설 ‘어머니 바다’(Mother Ocean)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원주민 부족들이 멸종 직전인 푸른 고래와 교감하여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마전 큰 인기를 끌었던 마블 영화 ‘샹치’도 중국계 수퍼영웅이 악을 물리치는 내용을 담았고,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중국계 이민자 세탁소 여주인이 멀티버스를 오가면서 지구를 구하는 내용을 다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오스틴 주립대(Stephen F. Austin State University) 문예창작학과 에리카 호글랜드(Erica Hoagland) 교수는 “공상과학 소설은 더 이상 남자아이들의 전유물(boys’ club)이 아니다”라면서 “독자들은 새로운 것을 읽고 지원하기를 원하며, 새로운 작가들이 나타나 기후변화, 인종차별, 이민, 권력투쟁 등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공상과학계의 권위있는 상 네뷸러상(Nebula)을 수상한 작가 켄 리우(Ken Liu)는 “원주민 또는 비 서구권 철학은 마치 현대성이나 미래와는 관련이 없는 대체 세계같이 묘사돼왔다”며 “그러나 최근 비서구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다루는 테크노 샤머니즘(techno shamanism)이 발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의 중학생 자녀도 아바타, 레전드 오브 코라 등 아시안을 소재로 삼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을 즐긴다. 이처럼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는 단순한 애들 만화책이 아니다. 자라나는 우리 2세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가르치는 수단이다. 우리 2세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아시안 공상과학 영화, 소설, 문화 창작자들을 응원하고 지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