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신 4월이다. 흐드러지게 피었을 진달래와 진노란 물이 베어 나올 것 같은 개나리가 눈에 보이는 듯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엄마의 얼굴이 겹쳐지며 순간 먹먹해졌다. 그 먹먹함은 이내 인천 공항으로 이어지더니 갈 곳을 잃은 강아지처럼 막막해 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정겹던 엄마집은 더이상 한국에 없다. 연세 많으신 엄마가 계실땐 해마다 한국에 나가는 일이 나의 연중행사가 되어 있었다. 아파트 게이트 번호는 물론이고 현관문 비번은 일년이 지나도 내집인양 자연스레 눌러졌고 내가 도착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다고 텃밭에서 키운 상추나 야채거리를 갖고 오셔서 마치 자신들의 딸인듯 정을 나누셨다. 오빠들과 올캐들 그리고 조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락거리며 맛있는 음식과 담소로 집안 전체에 활력이 넘쳐 흘렀다. 한국은 언제나 보고싶은 엄마가 계신 곳이었고 정겨운 식구들이 나를 기다리는 그리움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제 다시 한국을 나가려니 어디서 머물까 하는 혼자만의 은근한 걱정이 생긴다. 가족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집에 머무르라 하겠지만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난치며 재밌게 지냈던 우애 깊은 형제지간이지만 이젠 손주들까지 본 한 세대의 어르신이다. 자신들의 가족 모임만으로도 분주하고 자식들 손주들까지 시도때도 없이 들락거릴텐데 불쑥 그 집에서 짐을 푼다는 것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궁리끝에 호텔을 잡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호텔까지 혼자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순간 그 모습이 낯설고 어색해 짜증이 났다. 어처구니 없게도 가이드 없이 낯선 이국땅에 혼자 남겨진 것같은 이질감이 드는 것이다. 마치 호텔 탓인양 밤새 어느 호텔이 제일 좋은지 들여다 보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잠을 설쳐댔다. 짐을 들고 호텔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다 이 호텔은 아니야 다른데 알아보자 하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정말 별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인데도 난 내내 우울했다. 왠지 모르는 짜증이 올라오고 체증이 있는듯 답답했다,
부모님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지자 한국은 왠지 서먹서먹하게만 느껴졌다. 정겹던 동네길, 엄마와 팔짱 끼고 걷던 마트 가던 길들이 모두 추억이 되어 빛바랜 모습으로 사진첩 속에 들어가 버린 듯 했다. 10년 정도 지나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으려나 … 간신히 가라앉힌 묵직한 앙금을 다시 휘젖고 싶진 않았다. 한국 가족들조차 엄마와 함께 박제가 되어 그곳에 봉인되어 버린 것 같았다. 돌이킬수 없는 시간을 마주 하는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한국의 모든 것을 의식에서 분리시켜 생소하고 어색하게만 느껴지게 했다.
밤잠을 제대로 못잔 무거운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머리 속이 개운치 않았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들어보니 한국서 걸려 온 오빠의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기운이 났다. 한국 방문을 알리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며 도착시간과 일정을 자세히 물었다. 내가 혼자 갈 수 있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사이 어깨너머 올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걱정 말고 편안히 오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에 깃든 명랑함과 편안함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시간의 틈을 비집고 스며들었다. 조카 손주들 얼굴도 봐야지 하는 오빠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벌써 이부자리 다 빨아 놓고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올캐의 말에선 엄마의 냄새가 베어나왔다. 한참을 사소한 이야기로 떠들어 놓고도 나오면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잔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는 엄마가 안계신 한국을 다시 가슴 속에 들여 놓았다. 아쉬움만 남긴채 추억이 되어 멈춰 버렸다고 생각한 시간이 온기를 가지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에 나간다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방문이었다. 그리운 친지의 방문이었고 보고픈 부모님을 뵈러가는 정겨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안계신 한국은 이젠 꼭 가야할 방문길이 아닌, 가고 싶을때 가는 여행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왠지 낯설고 어색하고 모든 것이 처음인양 주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알것 같다. 모든 걱정은 나의 기우였다는 것을. 한국행은 앞으로도 계속 방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