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간선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부진으로 끝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높지 않은데다 코로나19와 인력부족, 인플레 등 경제문제 심판 심리로 인해 모두가 집권당 민주당이 대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은 상원 과반 수성에 성공했고, 하원도 과반을 뺏기긴 했지만 공화당과 별 차이나지 않는 성적을 거뒀다.
공화당의 ‘레드 웨이브’를 막은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로 CNN등 언론은 낙태권(임신중절권) 폐지를 거론한다.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6월 돕스 판결(Dobbs) 판결을 통해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고 낙태권을 각 주의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CNN출구조사 결과 유권자들의 29%가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낙태권을 거론했고, 유권자들의 약 60%가 낙태권 폐지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캘리포니아주, 버몬트주, 미시간 주 유권자들은 낙태권을 보장한다는 주 헌법 개정안에 과반을 훨씬 넘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주의 리버럴 비영리단체 ‘데이 시 블루’ (They See Blue)의 스바 스리니바사랑가반(Suba Srinivasaraghavan)은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는 2022 중간선거에 있어서 정치적 자살골이었다”며 “이제 낙태는 수많은 유권자와 후보자들에게 있어 당면한 과제”라고 평한다. 낙태권 폐지 판결 직후 더욱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까지 나섰다는 것이다. 낙태 지지단체 프로-초이스 아메리카(Pro-Choice America)의 안젤라 바스케즈-기록스(Angela Vasquez-Giroux) 부회장 역시 “지난해 선거에서 낙태권 문제가 선거 안건으로 올라온 주마다 큰 표차로 낙태권 찬성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내년으로 다가온 2024년 대선에서도 낙태권이 도마에 오를 것인가? 지난해말 실시된 임팩트 리서치(Impact Research)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52%는 공화당이 앞으로도 낙태권을 더욱 제한할 것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특히 지난해 민주당에 투표한 비민주당원의 53%, 흑인 유권자의 74%가 같은 대답을 했다. 유권자 48%는 앞으로 공화당이 낙태권을 더욱 제한하면 지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여성단체는 낙태권 폐지 문제가 내년에도 여성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고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 낙태 수술 뿐만 아니라 낙태약까지 불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는 FDA의 낙태약 사용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아태계여성포럼(NAPAWF) 이본느 추(Yvonne Hsu) 정책국장은 “급진적인 판사와 정치인들이 기본권을 빼앗아간데 대해 여성 유권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언어, 문화장벽으로 소극적이었던 여성들이 더욱 많이 투표장으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인을 맡았던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몇년전 강의에서 “공화당은 낙태권을 합법화된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리버럴한 민주당은 낙태권을 얻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은 반면, 공화당은 낙태권 폐지를 위해 계속 결집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태권을 폐지하는 순간 원하는 것을 얻은 공화당은 분열되는 반면, 그 반동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결집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 것이다.
한국대법원은2019년 낙태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60년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과 여성인권 향상의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그 판결을 뒤집어버렸다. 시대를 역행한 낙태권 폐지가 내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간다.